#. 신세계푸드의 ‘대박라면 고스트페퍼 스파이스 치킨맛’이 지난달 중국에 출시됐다. 지난 3월 말레이시아에서 첫 출시한 이후 6월 대만, 8월 싱가포르에 이어 중국 진출까지 이뤄낸 것.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이 제품을 맛볼 수 없다. 국내시장엔 정식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삼양식품은 지난 8월 말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인증 ‘맛있는 라면’을 출시했다. 비건라면 생산을 위해 국내 공장에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선을 보인 건 국내가 아닌 인도였다. 전체 인구의 40%가량이 채식주의자인 인도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국내 라면업계가 해외시장에 빠졌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주요 라면업체들은 수출 전용 상품까지 출시하며 해외 진출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신세계푸드와 같이 기존에 라면을 팔지 않던 기업마저 수출에 나섰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말레이시아 한 편의점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대박라면 '고스트 페퍼 스파이시 치킨 맛'을 먹고 있다. /사진제공=신세계푸드

◆비건·할랄… 한국서 안파는 국산라면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에 따르면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중국·인도네시아·인도·일본·베트남·미국·필리핀에 이어 8위다. 이에 라면업계는 국내를 넘어 중국과 미국, 동남아 등 더 큰 시장으로 영토를 확장 중이다. 최근에는 아예 해외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무슬림을 위한 할랄라면,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라면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무슬림 인구의 60% 이상이 모여 있는 동남아에서는 할랄식품이 승부수다. 할랄식품으로 분류되려면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인증 절차가 필요하다. 생산라인을 따로 마련해야 해서 비용 문제도 따른다. 하지만 세계 할랄시장 규모가 올해 2조5370억달러(약 3000조원)로 급부상한 만큼 업계는 할랄 인증을 받은 제품들을 내놓으며 승부를 보고 있다.

삼양식품은 2017년 라면업계 최초로 인도네시아 ‘무이’ 인증을 획득했고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와 아랍에미리트 ‘에스마’의 할랄 인증을 취득했다. 지난 1월에는 본격적인 할랄식품 사업을 위해 말레이시아 국영기업 FGV그룹과 손을 잡고 현지 생산공장 설립에 착수했다.


(왼쪽부터) 대박라면 고스트페퍼 스파이스 치킨맛, 할랄 신라면. /사진제공=각 사

신세계푸드도 지난해 3월 말레이시아의 식품기업 마미더블데커와 합작해 할랄라면 ‘대박라면’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현지 라면보다 3배 비싼 가격임에도 월 30만개, 연간 400만개가 팔려나가며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이미 시장에 진출한 농심의 ‘할랄 신라면’도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만 약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비건시장도 부상하고 있다. 비건라면은 고기뿐 아니라 수산물, 우유, 계란 등 동물성 재료를 엄격히 제외한 채식 전용 식품이다. 라면업계는 저마다 비건라면을 출시하며 1억8000만명에 달하는 전세계 채식 인구를 공략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맛있는 라면’, ‘김치라면’ 등 최근 자사 인기 라면을 비건 제품으로 바꿔 재출시에 나섰다. 오뚜기도 지난해 3월부터 비건라면인 ‘베지진라면’을 인도에 선보였다. 농심의 수출용 야채라면 제품인 ‘순’ 라면은 전 세계 시장에서 지난해 7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라면업계, 해외로 눈 돌리는 이유
라면업계가 해외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건 국내시장이 포화되고 성장이 정체된 까닭이다. 저출생으로 라면을 먹는 연령대는 점차 줄고 있다. 또한 가정간편식(HMR)이 연평균 20%의 성장세를 보이며 라면 수요를 잠식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2013년 2조원을 돌파한 뒤 제자리걸음이다. 주요 라면업체들의 올 상반기 라면류 매출도 전년 대비 감소세다.

반면 해외시장에서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농심은 올해 상반기 라면 수출액이 542억원으로 8.7% 증가했다. 특히 미국시장의 성과가 돋보인다. 일찌감치 미국 LA에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에 돌입한 농심은 2017년 미국 전역의 월마트 4000여개 점포에 입점했다. 그 결과 미국시장 내 점유율은 10년 전 2%에서 현재 15%까지 올랐다.


농심은 올해 해외매출 신기록인 1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반기부터 미국에 ‘신라면 건면’ 수출을 시작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이 기세를 몰아 농심은 최근 2억달러(약 2400억원)를 투입해 미국 LA 인근 코로나에 제2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미국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가는 동시에 다양해지는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삼양식품은 상반기 해외에서만 12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 대비 15.5% 증가한 수치다. 특히 지난 2분기에는 처음으로 해외매출이 국내매출을 추월했다. 2분기 해외매출은 697억원으로 국내매출(640억원)보다 57억원 앞섰다.

삼양식품의 해외매출을 견인한 건 ‘불닭볶음면’이다. 중국과 동남아를 넘어 미국, 유럽 등 총 76개국에서 판매 중인 불닭볶음면은 전체 해외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은 2016년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불닭볶음면 도전’(fire noodle challenge) 영상이 유행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에 삼양식품은 현지인의 입맛을 고려한 ‘까르보불닭볶음면’, ‘치즈불닭볶음면’ 등 시리즈를 연이어 출시하며 브랜드 파워를 강화했다. 나아가 삼양식품은 세계시장 수요 급증에 따라 해외 곳곳에 생산기지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국산 라면은 K푸드 열풍에 힘입어 지속적인 해외시장 성장세가 예상된다. 라면업계의 해외수출 규모는 지난해 4억1300만달러(약 4861억원)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는 지난해 수준을 넘어 수출 신화를 다시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국내 라면업계에는 히트상품이 없어 실적이 저조한 반면 해외에서는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한류와 먹방 인기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라며 “다양한 현지화 상품 개발로 해외수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2호(2019년 10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