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이 지난 1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조 설립 신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DB
합법화된 보험설계사 노동 조합이 만들어질까. 최근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전국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이 서울지방노동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정부의 승인이 날 지 관심이 집중된다.
설계사 노조가 설립되면 단체교섭권이 보장되고 이에 따른 설계사들의 수당 인상 요구와 파업 등이 가능해진다. 보험사로부터 부당한 해촉을 당하는 설계사들이 기댈 수 있는 단체가 마련되는 셈이다.

올 6월에는 서울시가 국내 생명보험사인 오렌지라이프 노조 설립을 인정하면서 전국 단위의 노조 설립도 가능해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40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 모두가 노조 설립을 원하는 것은 아니어서 갈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무르익는(?) 노조 설립 분위기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은 9월1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노동청 앞에서 이들은 "보험회사는 당장의 영업실적을 위해 허위, 과장 광고 교육을 설계사에게 하면서 정작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설계사에게 떠넘겨 보험설계사가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보험설계사는 학습지 교사, 택배 노동자, 대리운전 기사, 방과 후 강사 등과 함께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분류된다. 이들은 형식적으로 '자영업자'로 규정돼 현행법하에서는 노조설립이 허용되지 않는다.


오세중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 위원장은 노조 설립 신고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특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노동3권도 보장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여태 지키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하루빨리 공약을 이행해 모든 특고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위한 노동3권 공약을 내세웠다. 문 대통령 당선 후 해당 공약은 빠르게 급물살을 타며 국가인권위원회-고용부를 거치며 정책화되는 듯 했지만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고용부 측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현행법상 노동자가 아니며 개인사업자의 형태를 띠고 있어 근로기준법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6월 오렌지라이프 보험설계사 노동조합 설립 인가 필증을 교부하며 서울지역 보험설계사에 대한 노조 설립을 처음으로 승인한 바 있다.

아직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과 관련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지만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노조 설립을 인정했다. 서울시 측은 요건만 갖추며 다른 보험설계사 노조 신고도 승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이번 노동조합의 설계사 노조 합법화 승인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진=뉴스1DB
◆설계사 간 의견도 엇갈려

하지만 설계사 노조 설립에 대해 '설계사'간 의견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보험사 전속설계사들은 노조 설립에 동의를 하면서도 보험사로부터 얻을 불이익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눈치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전속설계사들에게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이 주어지는 것이 난감하다. 설계사들이 노조를 등에 업고 각종 요구를 해오면 들어줘야 할 상황이 많아진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들은 설계사 노조 참여정도에 따라 불이익을 제공할 수도 있다.

한 전속설계사는 "설계사들끼리도 서로 관심이 없거나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편인데 굳이 노조 설립을 이유로 뭉쳐야 하나라는 시각도 있다"며 "또 전속설계사 입장에서는 보험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속설계사는 "이번에 노조 설립 신고를 한 노동조합 단체도 400명 정도가 활동한다고 들었다. 전국 설계사가 40만명인데 01.%에 불과하지 않나"라며 "40만 설계사 모두가 노조 설립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보험사 구속에서 보험사 전속설계사보다 자유로운 법인보험대리점(GA)설계사들은 노조설립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다만 4대보험 가입 등은 원하지 않았다. 한 GA설계사는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 수 있는 4대보험 가입은 대부분의 설계사가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들의 입장과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노조 설립은 찬성이다"고 밝혔다.

2017년 보험연구원이 보험설계사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조사해 발표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입법에 대한 보험설계사 인식조사'에 따르면 설계사들은 고용형태로 근로자(19.4%)보다 개인사업자(78.4%)를, 납세형태도 근로소득세(19.5%)보다 사업소득세(76.4%) 납부를 선호했다. 이는 설계사들이 개인사업자가 아닌 근로사업자로 활동하게 됐을때 세금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사업소득세 3.3%만 내지만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이보다 높은 세율의 근로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당시 조사에서 노동조합 설립에 있어서도 설계사들 간의 의견은 엇갈렸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험설계사 노조 설립 시 가입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3.9%, 잘 모르겠다가 12.3%, 가입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53.9%였다. 10명 중 6~7명의 설계사는 노조가 설립돼도 가입을 망설이거나 미가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비록 2년전 조사이기는 하지만 수수료가 주 수익인 설계사들의 의중이 현재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계사 4대보험 가입이나 정규직화는 그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상태"라며 "다만 보험사나 GA의 불공정행위에 지친 설계사들은 노조 설립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부 승인이 날지 업계에서도 궁금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