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읍 세화리, 작은 마을로 떠난 겨울여행
20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해변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제주 동쪽, 구좌읍 세화(細花)리는 가는(작은) 곶이 많다고 해 붙여진 작은 어촌이다. 곶과 곶 사이에는 바다에서 굳은 검은 화산석이 푸른 바다 빛깔과 인상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른 아침, 바다로 툭 튀어나온 화산석 갯바위에 서면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위로 올라와 참았던 숨을 쉴 때 내뱉는 소리를 가리킨다.세화해녀민속오일시장(세화오일장, 끝수 5·0일)에서 하도리 별방진까지 작은 어촌에서 하루여행이 완성된다.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겉멋 요란한 여행은 아니다. 수수하면서도 되새겨볼 구석이 많은 속이 꽉찬 여행이라 발걸음은 멈추기를 거듭한다.
◆제주해녀항일운동과 세화오일장
세화해녀민속오일시장 입구. 오른쪽에는 해녀상이 있고 해녀들의 항일투쟁사를 기록했다. /사진=박정웅 기자
크고 작은 불턱과 원담…. 거친 파도와 물보라는 제주 여인들의 강인한 삶을 꺾을 수 없던 모양이었다. 특히 세화리를 비롯한 이곳 구좌, 제주 동쪽의 아낙들은 세월의 드센 파고를 이겨냈다. 물질이며 밭일이며 집안의 생계를 도맡아온 억척스런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도 한때는 꿈 많은 소녀였다. 때문에 지형에서 유래한 세화 지명에서 척박한 현실에 내던져진 그들의 피지 못한 가녀린 꽃을 떠올려본다.20일, 때마침 열린 세화오일장을 찾았다. 이 장은 1912년 옆마을 하도리 별방진에서 열린 것을 시초로,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1930년대 최대 항일운동인자 최초 여성 주도 항일운동인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시작된 장터다.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김계석, 고순효 등 5명의 해녀 대표가 이끈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1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졌다.
세화오일장 내부. /사진=박정웅 기자
세화오일장 내부. /사진=박정웅 기자
일제의 탄압과 착취에 10여년을 시달린 수백명의 해녀들은 1932년 1월7일 세화오일장을 기해 투쟁의 불꽃을 피어올렸다. 다음 장날인 12일에는 하도리, 세화리, 오조리, 시흥리 해녀 1000여명이 세화오일장에 모였고 수많은 군중과 집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해녀들은 호미와 빗창(전복을 따는 쇠꼬챙이)을 들고 일제와 맞섰다. 이를 시작으로 제주 전역에서 1만7000여명이 항일운동이 참여했다. 총 230회의 시위와 집회로 발전한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기록된다. 세화오일장 정문 오른쪽에는 제주 해녀 조형물을 세워 역사적인 사실을 알린다. 시장의 크기를 따지다면 제주에서 으뜸인 동문시장을 한참이나 따라갈 순 없겠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과 한적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해산물부터 채소, 과일, 잡화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고 요깃거리도 웬만해서다.
◆물 안팎의 모진 삶 내뱉는 숨비소리
제주해녀박물관 전경. 박물관 위에는 불턱 모양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구좌에는 제주해녀 삶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약 4㎞ 거리의 ‘숨비소리길’이 조성됐다. 세화해변 인근의 하도리 해녀박물관을 기점으로 별방진까지 원담, 불턱, 집담, 밭담 등 해안길과 마을길, 들길을 한꺼번에 둘러보는 원점 회귀 코스다. 한마디로 물질과 밭일에 눈코 뜰 새 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해녀의 일상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체험형 걷기여행길이다. 해녀박물관은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발상지에 자리한다.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을 확인한 것이다. 제주해녀들의 생존과 삶, 자존의 역사를 담은 공간이다. 생활풍습, 무속신앙, 공동체 생활 등 제주해녀의 모든 것과 제주의 전통문화를 망라했다. 박물관 맞은편 숲은 제주 도처가 그렇듯 4·3 학살의 현장이다.
해녀박물관 불턱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세화여행의 시작점인 세화버스정류장에도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류장은 제주공항과 서귀포를 오가는 101번 급행버스가 서는 곳이다. 또 제주버스터미널을 오가는 201번 등도 선다. 버스정류장 가까이에 있는 구좌파출소를 주목하자. 이 파출소는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아픔을 간직한 세화 경찰관주재소 터다. 파출소 오른쪽 담 밑에는 두 개의 표지석이 있다.하나는 일제강점기 해녀들의 투쟁을 기록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4·3과 잇댄 것이다. 해녀들의 항일투쟁 표지석은 옆의 것에 비해 매우 작다. 1932년 1월12일 이 지역 해녀들이 집결해 당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장인 일본인 도사(島司)에게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제시하면 담판을 벌인 곳이 주재소 터다. 이틀 뒤인 14일 청년 운동가들의 검속에 반발해 해녀들이 일본경찰이 맞서 싸웠다. 다른 큰 표지석은 1948년 4월3일과 12월3일, 4·3의 두 차례 교전사를 다뤘다.
구좌파출소와 나란한 두 표지석. /사진=박정웅 기자
◆별방진으로 떠나는 고즈넉한 여행세화리에서 동쪽 방향 해안길을 걸으면 하도리다. 포구에 영어 알파벳으로 쓰인 흰색 하도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쪽으론 시커먼 화산석을 켜켜이 쌓아올린 성곽이 눈에 띈다. 조선 중종 때 제주목사 장림이 왜구를 막기 위해 구축한 별방진(제주도기념물 제24호)이다. 구좌의 서쪽 환해장성(한동리·동복리)보다는 덜 알려진 곳이어서 한번쯤 찾아봐도 좋을 데다. 화산석 성곽이나 매우 튼튼하게 축조대 답성에 안성맞춤이다. 성곽에서 마주한 마을과 들판, 바다 조망은 고즈넉한 풍경을 자랑하다.
하도리 별방진과 하도포구의 하도 알파벳 조형물.별방진 바로 아래에는 용천수 샘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별방진 성곽서 바라본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별방진은 지형적으로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타원형의 성곽이다. 성곽 안에는 서도마을민이 산다. 진의 규모는 둘레 1008m, 높이 3.5m 정도다. 동·서·남쪽에 문 3개와 옹성 3개소, 치성 7개소가 있었다 한다. 성곽 아래에는 바다 쪽으로 용출수 샘이 있다. 진 안에는 진사, 객사, 공수, 사령방, 군기고 등 진영의 모습을 갖췄다. 흉년에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는 별창을 갖춰 조선시대 제주 동부지역엣 가장 큰 진성이었다.이번 겨울, 느긋한 걸음을 생각한다면 제주의 서쪽 작은 마을을 찾아봐도 좋겠다. 바다와 마주하는 길에서 해녀들의 삶과 투쟁, 4·3의 참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또 중산간으로 향하는 세화리의 끝쪽에는 오름의 여왕이자 제주 동쪽에서 가장 큰 다랑쉬오름이 있다. 너른 분화구를 따라 걷는 오름 걷기여행도 좋다. 또 오름 아래 4·3의 대표적인 학살 현장인 다랑쉬굴이 있다. 오름 너머에는 천년의 숲 비자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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