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오랜 시간 정치권에서 맞수였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세번째 맞대결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이번 4·15 총선을 두 사람 간 마지막 대결로 점치고 있다.
이들은 32년 전인 지난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을에서 처음 대결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인지도가 높았고 이미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었다.
반면 야당인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운동권 출신의 이 대표는 36세 출마를 선언하며 “새시대에 걸맞은 참신함과 전문성을 갖춰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실제 투표에선 이 대표가 31.1%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 위원장(27.1%)에 승리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첫 지역구 출마가 패배로 끝났지만, 이 대표는 이후 관악을에서 내리 5선을 했고 진보진영의 거물급 정치인이 됐다.
28년 후인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에서 김 위원장과 이 대표가 한 팀으로 총선을 치렀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됐고 공천과정에서 이 대표를 컷오프(공천 배제)시켰다.
결과적으론 민주당이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을 꺾고 제1당을 확보했고 지휘로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었다.
이때 컷오프당했던 이 대표는 “공당의 결정은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세종시에서 당선됐다.
이후 이 대표는 당시 총선 이후 6일만에 복당 신청을 했다. 김 위원장은 총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던 친문세력과 갈등을 겪으며 오히려 입당 13개월 만에 탈당했다. ‘친노계 좌장’으로 불리던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당권까지 잡으며 당을 장악했다.
두 정치 거물의 세번째 대결은 선거를 총괄 지휘하는 거대 양당의 ‘감독’ 역할로 맺어졌다.
현재 여론조사 판세로는 이 대표가 다소 앞서 있으나 실제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막판까지 접전지를 돌며 유권자와 만나고 있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세번째 맞대결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이번 4·15 총선을 두 사람 간 마지막 대결로 점치고 있다.
이들은 32년 전인 지난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을에서 처음 대결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인지도가 높았고 이미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었다.
반면 야당인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운동권 출신의 이 대표는 36세 출마를 선언하며 “새시대에 걸맞은 참신함과 전문성을 갖춰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실제 투표에선 이 대표가 31.1%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 위원장(27.1%)에 승리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첫 지역구 출마가 패배로 끝났지만, 이 대표는 이후 관악을에서 내리 5선을 했고 진보진영의 거물급 정치인이 됐다.
28년 후인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에서 김 위원장과 이 대표가 한 팀으로 총선을 치렀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됐고 공천과정에서 이 대표를 컷오프(공천 배제)시켰다.
결과적으론 민주당이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을 꺾고 제1당을 확보했고 지휘로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었다.
이때 컷오프당했던 이 대표는 “공당의 결정은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세종시에서 당선됐다.
이후 이 대표는 당시 총선 이후 6일만에 복당 신청을 했다. 김 위원장은 총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던 친문세력과 갈등을 겪으며 오히려 입당 13개월 만에 탈당했다. ‘친노계 좌장’으로 불리던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당권까지 잡으며 당을 장악했다.
두 정치 거물의 세번째 대결은 선거를 총괄 지휘하는 거대 양당의 ‘감독’ 역할로 맺어졌다.
현재 여론조사 판세로는 이 대표가 다소 앞서 있으나 실제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막판까지 접전지를 돌며 유권자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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