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대주주 마힌드라가 지분 매각을 시사하면서 쌍용차에 위기감이 감돈다. /사진제공=쌍용자동차
쌍용자동차에 또다시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10년 전 유혈사태로 얼룩진 악몽을 되풀이하는 건 아닌지 업계의 우려가 크다. 대주주인 마힌드라는 수익성 개선이 없으면 손을 떼겠다고 엄포를 놨고 산업은행은 쌍용차에 모든 걸 내려놓으라 주문했다. 그야말로 기업 회생의 키를 쥔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밑 빠진 독 메울 방법 없나
쌍용차의 위기는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게 아니다. 2017년부터 올 1분기까지 1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올 1분기 당기순손실은 1935억원이다. 산업은행에 갚아야 할 차입금이 1900억원이고 당장 7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게 900억원이다.

업계에서는 3년 이상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 5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예상한다. 쌍용차는 자구노력 1000억원, 마힌드라를 통해 2300억원, 산은 등 정부 지원으로 1700억원을 확보하려 했지만 사실상 무산됐다.

결국 대주주의 결심 없이는 문제해결이 어렵지만 마힌드라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글로벌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2019년 12월 마힌드라는 산업은행의 추가 금융지원을 전제로 2300억원 증자를 요구했다. 물론 합당한 경영계획을 먼저 가져오라는 게 산업은행의 입장이다. 결국 마힌드라는 올 4월 투자 약속을 내려놓고 3년간 최대 400억원만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 이후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익성이 없는 사업은 새로운 투자자를 찾거나 정리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행보는 2018년 미국 제네럴모터스(GM)가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고용 위기감을 키운 뒤 한국 정부와 협상 끝에 7억5000만달러(8700억원)의 투자를 받아낸 것을 참고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GM의 글로벌 신차를 한국의 공장에서 직접 만들고 해외로 수출하는 조건부 지원이었기 때문.

그나마 마힌드라와 쌍용차 입장에선 현실적인 대안으로 포드차 위탁생산을 꼽을 수 있다. 마힌드라와 포드는 2017년부터 협력관계를 이어왔다. 포드가 취약한 인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마힌드라와 손을 잡은 뒤 2018년엔 플랫폼(차체) 등 기술을 지원했고 2019년엔 합작법인을 세웠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모든 게 멈췄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마힌드라가 한국 정부와 협상할 때 이를 일부 활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아예 사업을 접는 것 말고 딱히 내밀 카드가 마땅치 않아서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평택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며 “르노삼성차의 닛산차 위탁생산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의 이사회 의장인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회생 방안 논의를 위해 KDB산업은행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마힌드라는 먹튀인가
자동차업계에서는 마힌드라의 소원처럼 쌍용차의 새 주인이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당장 빚 갚는 데만 5000억원, 회생을 위한 투자에 5000억원 등 사실상 총 1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마힌드라가 투자계획을 철회하고 대주주 지위를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2010년 상하이차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소위 ‘먹튀’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필요한 기술만 빼먹고 내팽개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2011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될 때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다. 마힌드라가 쌍용차 지분 72.85%를 5500억원에 인수한 뒤 두 번의 유상증자를 통해 1300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지분은 75%로 더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게 2015년 등장한 소형SUV ‘티볼리’다. 이 차의 흥행 덕분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쌍용차 회생에 큰 역할을 했고 2018년 G4렉스턴 출시의 밑거름이 됐다.


티볼리를 개발하며 구축한 플랫폼은 2018년 마힌드라가 인도시장에 출시한 XUV300에 적용됐다. 쌍용차가 반조립상태(CKD)로 수출하고 인도에서 완성차로 조립한다. G4렉스턴은 G4알투라스라는 이름으로 인도에 수출된다.

쌍용차는 마힌드라의 사업의지가 없어진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쌍용차 관계자는 “마힌드라가 신차개발을 위한 신규 플랫폼을 제공하기로 했다”면서 “당장 지원금은 아쉬울 순 있지만 그룹 차원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사업성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규 플랫폼을 제공받으면 개발비를 줄이고 개발기간도 크게 단축할 수 있고 호환성 때문에 위탁생산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에 쌍용차는 우선 자구책으로 서울 구로 서비스센터 부지와 부산물류센터 등 자산을 매각해 2000억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해 급한 불을 끄려 했다는 입장.
쌍용차 경영실적 /그래픽=김은옥 편집기자

회생 시나리오는?
자동차업계에서는 쌍용차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먼저라고 본다. 쌍용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마힌드라는 인도 내수시장 의존도가 90%여서 내수가 주저앉으면 흔들리는 구조”라며 “푸조 모터사이클과 이탈리아 피닌파리나를 인수한 것도 수출을 늘리기 위한 비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룹 차원에서 보면 앞으로 2~3년 안에 회생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그때까지 살아남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마힌드라는 2015년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를 124억루피(당시 2190억원)에 인수하며 전기 슈퍼카 제작 의지를 밝혔다. 페라리를 30여년간 디자인한 회사여서 앞으로 출시할 쌍용차의 신차 디자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쌍용차는 국내 SUV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2017년부터 하향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자동차업계에서는 평택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게 우선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업계 관계자는 “연간 20만대 이상 생산 가능한 쌍용차 공장이 사실상 휴업에 들어간 상태”라며 “최소한 연간 4만~5만대 이상 생산해야 회사가 유지될 수 있는 만큼 위탁생산 유치에 집중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포드의 새로운 플랫폼에 피닌파리나의 디자인을 적용한 신차를 내놓는다면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충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마힌드라가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만큼 매각과정에 대한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마힌드라가 과반수 이상의 쌍용차 지분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2000억원가량을 대출한 점도 있고 당장 상환해야 하는 금액도 적지 않아 매각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마힌드라가 어느정도의 지분을 남길지에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