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진 기자 = 앞으로 보름도 안돼 임신 주(週)수나 사유와 전혀 무관하게 모든 '임신중지(낙태)의 비범죄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은 형법상 낙태 처벌 조항의 연내 개정이 사실상 무산된 데 따른 '입법 공백'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조속한 입법 보완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4월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법 개정을 완료하지 못함에 따라 현행 형법상 낙태 처벌 관련 조항은 내년 1월1일부터 효력을 잃게 된다.
당시 헌재는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위헌'으로 판단하면서도 즉각적인 위헌 판결에 따른 혼란을 감안해 2020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이를 반영한 법 개정을 완료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최근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며, 15주부터 24주까지는 기존 허용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추가한 일정조건 하에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법 개정 논의는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형법 개정안 공청회 이후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둘러싼 갈등으로 여야가 연일 전쟁을 벌이고, 4개 부처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 정국도 가까워오면서 연말까지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온 정부안과 더불어 권인숙·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해진·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순식간에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입법 공백이 기정사실화하자, 헌재의 판단 취지를 적극 받아들여 낙태죄 처벌에 문제 의식을 갖고 법 개정 논의에 참여해 온 쪽에서는 오히려 안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낙태를 처벌할 조항이 사라지는 입법 공백은 곧 현실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와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지금의 한국에서 국회가 결정하기에는 너무 논쟁적인 문제"라며 "결과적으로 헌재 취지에 맞는 결과가 나온 만큼 차라리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당분간 국회의 적극적인 낙태죄 관련 논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르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가 재개될 수는 있지만,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4월)와 차기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기 때문에 관련 논의가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입법 공백에 안도하는 쪽에서도 이런 상태가 장기화하는 것을 마냥 반길 일은 아니라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낙태 여성에 대한 처벌은 사라지겠지만, 입법 공백으로 인해 낙태 여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까지 여전히 빈칸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입법 공백에 따른 수동적인 '낙태의 비범죄화'가, 입법으로 완성되는 '완전한 낙태죄 폐지'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국회가 빠르게 Δ수술 외 '미프진' 등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 허용 Δ의료보험 지원 Δ상담 지원 등 모자보건법 개정을 중심에 둔 후속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언제가 될지 모를 형법 개정만을 바라보며 다른 일마저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우리보다 먼저 낙태죄 입법 공백을 경험한 캐나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캐나다는 우리처럼 1980년대 낙태죄 처벌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은 이후 정치권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30년 가까이 낙태에 대한 처벌이 사라졌다. 대신 그 사이에 정치권은 낙태 여성을 지원·보호하기 위해 움직였고, 낙태는 의료행위로 인정받으며 행해지게 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주 수와 사유를 논의하는 단계를 벗어나 실제 여성의 임신중지에 있어 안전성과 접근성을 높여 나가는 후속대책이 논의돼야 한다"며 "법 개정 논의는 워낙 어렵기 때문에 빠르게 완료되지 못하더라도, 후속대책이 보강된다면 여성의 안전을 보장할 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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