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명이라는 개념은 기후위기와 대량멸종, 생태적 불평등을 야기한 산업문명의 사상적 기반인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구성적으로 등장했다. 인간과 비인간, 정신과 물질, 과학과 자연의 이분법이 만들어낸 세계는 위계와 착취를 당연시했다. 산업문명은 유례없는 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 위에서 그릇된 서사를 써왔다. 지구 생태계를 무한정한 자원창고로 취급하거나 정복과 수탈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인 양 여겼다.
하지만 지구는 인간에게 무한정 아낌없이 퍼주는 화수분도 아니며 인간만의 전유물도 아니었음이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이라는 '생태적 한계'의 경고등이 켜지면서 알게 되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공이라는 팬데믹을 통해 더 이상 기존의 낡은 문명 시스템이 유효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제 산업문명의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태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한 '생태(eco)'라는 단어는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에 대한 사실과 더불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자연생태계를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를 모두 담고 있다. 생태는 지구상 모든 존재와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며, 문명은 사회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분야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생태문명은 기후변화나 환경파괴의 문제와 연관이 깊지만, 그것을 넘어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지구 전체의 생활양식을 아우르는 말이다. 생태문명은 생태와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전환의 방향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생태문명의 세계관은 '생명중심주의' 또는 '지구중심주의'이다. 산업문명이 인간중심주의라고 한다면 생태문명은 인간의 생명만이 아니라 생태계의 모든 생명, 더 나아가 지구 구성원들의 관계망인 지구시스템과 지구질서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명이다.
지구내 모든 생명과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공생과 공존을 우선하며 인류사회 역시 경쟁하고 배제에서 벗어나 협력하고 공유함으로써 적절한 물질적 수준과 최고의 정신적 수준을 가진 문명을 만들자는 이 주장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관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0년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지구헌장에는 “지구는 우리의 집이며 지상 모든 것의 집이다. 지구는 그 자체로 살아있다. 인간은 훌륭한 삶의 형태와 문화를 가진 지구의 한 부분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제 인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다. 지구와 호혜적 균형을 이루면서 평화, 아름다움, 창조력, 물질적 만족이라는 오랫동안 부정돼온 인간의 꿈을 이루는 것은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없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도, 이를 부추기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자원착취적 경제구조를 억제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지구를 보호하거나 우리 자신과 다양한 생명을 파괴하는 것,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자신과 지역사회, 소유와 존재, 다양성과 획일성, 경쟁과 협동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산업문명사회를 재고찰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생태문명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적절한 이름으로 보인다. 생태라는 말은 생명이 존재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자기 조직하는 유기체의 능력에 초점을 둔다. 문명이란 말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진정으로 겸허한 관계를 맺는데 요구되는 문화적, 제도적 전환의 깊이를 상기시킨다.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에서 근본적인 요건은 돈이 숫자에 불과하고 돈을 벌기 위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자살만큼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동시에 오랫동안 무시해 왔으며 심지어 부인해온 근본적인 진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생명체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살아남고 번성한다.
조용우 생태문명 전환포럼 공동대표/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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