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전반에서 횡령 사건이 불거지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기업 리스크로 떠오른 횡령… 경제위기에 더 늘어나나
②횡령 막을 '내부 통제 시스템' 실효성 높이는 방안은
③"작정하고 속이는데…" 직원 횡령 예방 어쩌나
국내 주요 기업에서 횡령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최근 고물가, 고금리 등 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주가 및 가상화폐도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횡령이 추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횡령은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특징이 있다.
꾸준히 증가하는 횡령… 배경엔 '솜방망이 처벌'
올해 상반기(1~6월) 오스템임플란트, 우리은행, 계양전기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횡령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각 사건 모두 회사 내부 직원이 수차례에 걸쳐 회삿돈을 빼돌려 주식 또는 가상화폐에 투자하거나 도박 및 유흥 등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 금액은 각각 2215억원(오스템임플란트), 697억원(우리은행), 245억원(계양전기) 등으로 추산됐다.

하반기 들어서는 현대제철 직원이 유령회사를 설립해 100억원가량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은 조업용 부품(와류방지기 등) 단가를 부풀리고 허위 발주 대금을 지불해 부당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제철은 내부적으로 횡령 의혹을 조사한 뒤 정확한 사실 여부를 판단해 경찰 조사에 넘길지 결정할 방침이다.


횡령 사건이 연이어 공개되고 있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횡령 발생 건수는 최근 10년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 경찰청이 발표한 '주요 경제범죄 발생 및 검거현황'에 따르면 횡령 사건은 2011년 2만6767건에서 2020년 5만8889건으로 120% 늘었다. 같은 기간 사기죄(56%↑), 배임죄(13%↓), 통화유가증권위조(92%↓) 등 다른 주요 범죄보다 범죄 증가율이 높았다.

횡령 사건이 늘어난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형법에 따르면 5억원 이하의 업무상 횡령의 처벌 수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그친다. 횡령 금액이 5억원 이상으로 오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데 부당 이득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3년 이상의 징역, 50억원 이상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불가하다. 처벌 수위가 낮다. 일각에서는 수백억 원을 횡령하고 징역 몇 년 살다 나오면 연봉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국가가 범죄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끄는데… 횡령, 불황에 추가 발생 가능성↑
투자업계에서는 횡령이 한국 기업의 신뢰도 하락을 이끌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증시 저평가 현상)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수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감안 할 때 일부 기업의 사례를 확대 해석한 뒤 한국 시장은 믿음직한 투자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스템임플란트와 계양전기는 횡령 사건이 벌어진 후 거래정지와 상장폐지 심사를 받으며 주가가 떨어졌고 우리은행은 거래정지 및 상장폐지 심사를 받지 않았으나 모회사 우리금융지주의 주가 하락은 피하지 못했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횡령 사건이 근절돼야 하지만 최근 침체된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횡령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 시각이다. 범죄를 통해 큰 이익을 챙기는 '한탕주의'가 횡령 배경 중 하나로 꼽히는데 경제가 불황일수록 범죄 유혹이 커지는 영향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 상승했다. 4월(4.8%)과 5월(5.4%)에 이어 물가 지속 상승하고 있다.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기업경기실사지수(100 이하일수록 부정적)는 지난 6월 82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4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2021년 2월(76) 이후 최저치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횡령 동기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가 안 좋을 때 범죄를 결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오랜 기간 경기가 안착하지 못하면 횡령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횡령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이 악화한 것도 횡령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낮은 금액에서 매수해 비싸게 팔아 이익을 거두는 주식·가상화폐 시장 특성상 회사에서 자금을 빼돌린 후 주가가 하락한 종목에 투자해 횡령한 금액을 보전하고 개인 이익을 노리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오스템임플란트, 우리은행, 계양전기 등에서 횡령한 혐의를 받는 직원들도 회삿돈으로 주식 등에 투자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홍 교수는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에 변동이 많을 때 횡령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 사업체에서 횡령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