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지난해 8월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살던 일가족 3명이 고립된 반지하 창틀의 높이다. 이들은 당시 무릎까지 차오른 빗물로 창문을 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집에 물이 찬다는 신고를 받고 4분 만에 출동한 경찰도 이를 막지 못했다.
반지하 주택은 한국의 '서울공화국' 문제는 단적으로 보여주는 근거다. 경제 발전과 도시화가 본격화되며 대도시의 주거난이 시작됐다. '건축법' 제정 당시 불법이었던 지하층 거주가 1976년부터 합법화됨에 따라 본격적인 반지하 양산의 시작을 알렸다. 1960년대 이전 건축된 서울 주택에 지하층이 설치된 곳은 7%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엔 95%로 늘었다. 2020년 현재 서울엔 전체 가구의 5%를 차지하는 20만의 반지하 가구가 있다.

반지하 주택엔 여러 문제가 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햇볕이 잘 안 드는 데다 환기도 어렵다. 거주자의 안전과 건강을 해칠 위험이 크다. 그럼에도 사는 건 가격 때문이다. 지상에 있는 집보다 월세가 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서울에서 전용면적 60㎡ 아파트에 살려면 월세로 평균 56만원을 내야 하지만 같은 크기 반지하에 살 경우 38만7000원이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한 것도 반지하 선택의 이유 중 하나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반지하 거주 가구의 3분의 1이 출근을 위해 반지하에 산다고 대답했다. 수도권 지하 임차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0만원대다. 일하려면 서울에 살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찾은 곳이 반지하다. 큰돈이 없어도 한 달 벌이로 집값을 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반지하가 지금까지 서울에서 꽤 비중 있는 주거의 한 형태로 유지될 수 있었다.

정부가 반지하 문제에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건축 관련 법령 개정 등을 통해 반지하 주택 건축을 제한하고 서울시는 지난해 폭우 이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재정비)하도록 했다. 반지하 밀집지는 공공재개발이나 신속통합기획 등 정비사업 대상지로 우선 선정하기도 했다. 반지하 주민이 지상층으로 이주 시 월 20만원의 월세 보조금을 최장 2년까지 지원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부터 지하층에 거주하는 임차인을 이주시키는 데 초점을 둔 전세자금대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은 그럴듯하나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지난 6월12일 서울시가 발표한 '풍수해 대책 추진사항'에 따르면 서울 내 반지하 주택 중 1280가구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도록 했고 970가구에는 반지하 특정 바우처를 지급했다. 전체 반지하 주택 23만가구의 0.9%만 주거 이전이 이뤄진 셈이다. 지난 5월31일 기준 물막이판·역류방지기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 대상에 해당하는 서울시 침수 이력 주택 1만5291가구 가운데 실제 설치가 진행된 곳은 3416가구(22.3%)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의 반지하 대책의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반지하 주택을 모두 공공매입해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지하주택의 소유자 상당수는 재정 여건이 충분치 못해 주택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정부 정책이 민간의 자발적인 리모델링과 신축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곧 장마철이다. 반지하의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는다. 반지하 자체가 누군가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만큼 근절만을 목표로 하는 성급한 방안을 내놓기에 고민이 많을 수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빛 좋은 정책만을 만들려다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야말로 개살구와 다를 바 없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정도가 소득과 주거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건 재해가 아니다. 인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