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진 작가.
장거리 여행이 아닐 때도 비교적 뭘 많이 들고 다니는 편이다. 휴대폰과 이어폰, 지갑은 물론이고 립밤과 인공눈물을 꼭 챙긴다. 읽을 책과 생수 한 병도 넣어야 하고 비타민이나 초콜릿, 사탕 같은 것들도 만약을 대비해서 한 움큼 담는다. 운전도 안 해서 많이 걸어 다니면서도 가방을 무겁게 만드는데, 갑자기 필요한 게 내 손에 없는 상황이 싫어서 그 무거움을 감수하는 것 같다. 다만 가죽 가방이 점점 무겁게 느껴져서 언제부턴가 천으로 된 에코백을 더 자주 들긴 하지만…. 만약의 불편함에 대비하는 만큼 한층 무거워지는 나를 발견하면서 자유로워지려면 덜어내야 한다는 평범한 이치를 실감한다. 있으면 만약의 경우에 편할 순 있겠지만 갖고 다니는 내내 덜 자유롭기도 하다. 가방에 든 게 적고, 손에 든 게 없을수록 두 팔이 자유롭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준비성은 한편으로 욕심의 다른 말 같기도 하다. 원하는 때에 꼭 그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니까 말이다.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성 있는 나는 그렇다면 늘 소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가. 불편함 없이 갖고자 하는 마음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싶진 않지만 만약을 대비하는 성실한 자세에도 자유를 담보로 하는 함정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한다. '만약'을 너무 많이 생각하면 현재의 즐거움과 순간의 발랄함을 놓치기 쉽다. '만약'을 너무 두렵게 여기면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신을 잃곤 한다.
만약을 위해 무거운 짐가방을 꾸리는 오래된 나로부터 가끔은 해방되고 싶다. 매사 준비하는 자세가 욕심껏 소유하려는 마음과 맞닿아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진정 자유롭기 위해 '없음'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할 텐데 아직 갖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인지 아쉬워하면서도 자꾸만 자유를 내어준다. 다만 조금씩 더 체득하게 된다. 가져서 더 편해진다고 꼭 더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라는 걸. 편리함과 자유로움은 둘 중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얻는 선택의 문제일 때도 있다.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살았던 소로나 무소유를 설파했던 법정 스님은 편리를 버리고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소로는 '월든'에서 "요컨대 오도 가도 못하는 인간이란, 자신은 가까스로 옹이구멍 같은 문을 빠져나왔지만 수레에 쌓아올린 짐이 문에 걸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썼고,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라고 썼다.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조민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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