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2단계 법안 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빗썸 사고 여파 등으로 가상자산 업계 규제 환경이 더욱 엄격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삼성점. /사진=뉴스1
빗썸의 대규모 코인 오지급 사고의 여파로 '자율규제' 기조 강화를 주장해왔던 업계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에서도 자율규제가 아니라 되레 '강제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9일 금융당국과 국회에 따르면 정부는 가상자산 2단계법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의 여당안과 조율을 거쳐 설 연휴 이전 법안 발의를 목표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이번 빗썸 사태를 계기로 규제 수위에 대한 여당, 정부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던 구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촉발점은 빗썸의 '코인 오지급' 사고다. 빗썸은 지난 6일 이벤트 당첨금 지급 과정에서 직원 실수로 지급 단위를 '원'이 아닌 '비트코인(BTC)'으로 잘못 입력해, 당초 249명에게 나눠 지급할 예정이던 62만원이 비트코인 62만개로 잘못 지급됐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60조7600억원에 달한다. 사고 발생 직후 빗썸은 오지급 자산에 대한 즉각 회수 조치를 시행했으며 회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세한 차이까지 포함해 이용자 자산 정합성을 완전히 맞추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대응을 진행했다.


문제는 빗썸이 실제 보유한 비트코인 물량이 약 4만6000개 수준이라는 점이다. 보유량의 12~13배에 달하는 비트코인이 시스템상 지급된 셈인데, 이는 거래소 전산·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빗썸 사태 여파… 가상자산거래소 자정 능력 신뢰 하락
금융당국은 가상자산거래소의 자정 능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간 거래소들이 주장해 온 자율규제 논리가 이번 사태로 설득력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2026년 업무계획' 모두 발언에서 "빗썸 사고에서 드러난 구조적 취약점 해소 등 가상자산 시장 이용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 2단계 법안(정부안)의 효과적 이행을 준비하고, 주요 고위험 분야에 대한 기획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안인 가상자산 2단계법에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외부 기관으로부터 주기적으로 가상자산 보유 현황을 점검받도록 하고, 전산 사고 등으로 이용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자의 무과실 책임을 인정하는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여기에 금융회사에 준하는 내부통제 기준을 가상자산거래소에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에서는 유사한 오송금 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영업정지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래소 역시 은행 수준의 전산·내부통제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자 신뢰 하락 역시 부담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타 거래소는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사고인데 해당 사고로 '같은 거래소'라는 이유로 묶여 업계 신뢰가 추락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주주 지분율 제한' 정부안 vs 여당 시각차 여전
가상자산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을 15~20%로 제한하는 '대주주 지분율 제한' 문제를 두고는 정부안과 여당 자체안 간 시각차가 여전하다. 금융당국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주주 지분 비중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민주당 디지털자산TF 측은 선을 긋고 있다.

이정문 의원실 관계자는 "TF가 준비 중인 가상자산 2단계 법안에는 대주주 지분율 제한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지분 구조와 전산·내부통제 사고를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오히려 대주주가 명확했기 때문에 사고 이후 사과와 보상 등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반론도 나온다. 지분이 지나치게 분산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주 국회에선 가상자산 2단계법과 관련해 업계 의견을 듣는 비공개 미팅도 진행됐지만, 빗썸 사태로 업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는 평가가가 나온다. 거래소들이 함께 주장해 왔던 규제 완화 기조 역시 동력이 약해진 상황이다.

정부안과 여당안이 완전히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설 전에 발의하겠다는 큰 방향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번 빗썸 사태가 입법 과정에서 규제 강화의 명분으로 작용하면서, 가상자산 업계 전반의 긴장감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