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추진을 중단하고 지방선거 이후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번 결정으로 민주당 내부 권력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 /사진=뉴스1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지방선거 이후 미뤘다. 당내 반청(반정청래)계, 즉 친명(친이재명)계의 거센 반발에 밀린 결과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 내 권력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차기 당권과 대권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정 대표는 흔들린 리더십 회복이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조국 혁신당 대표는 11일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 준비 위원회' 구성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또 혁신당 당원들에 대한 정 대표의 사과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합당 준비는 오는 6월 지방선거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에서는 합당을 둘러싼 이번 민주당의 내홍을 차기 당권과 대권을 둘러싼 친청(친정청래) 대 친명의 수싸움으로 해석하고 있다. '범민주 진영 통합'이라는 총론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정치적 득실이 확연히 갈리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은 친명계 비당권파와 정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로 갈라져 있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재창출을 노리는 친청계 입장에서 혁신당과의 합당은 매력적인 카드다. 혁신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성이란 평가를 받는다. 당원 규모는 작지만 결집력이 높은 '캐스팅 보터' 그룹이다. 친청계 입장에선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오른쪽(중도)으로 이동한 친명계를 견제하기 위해 더 왼쪽에 있는 혁신당을 흡수, 범진보 진영의 구심점이 되고자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대표가 홀로 합당 이슈를 띄우고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실제로 합당이 이뤄졌다면 유입된 혁신당 당원들의 전당대회 표가 정 대표 등 친청계로 쏠릴 것이란 계산도 한몫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정 대표가 주도해 합당을 성사시켰다면 혁신당의 당원들이 고스란히 정 대표의 우군이 됐을 것"이라며 "이는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청계가 주도권을 쥐는 데 결정적인 한 방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합당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차기 당권의 무게추는 친명계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사진은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에 입장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친명계가 결사적으로 지방선거 전 합당을 막아선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합당이 정 대표의 치적으로 귀결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합당을 하고 통합 전당대회를 치렀으면 한다는 게 대통령의 바람"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강득구 최고위원은 전날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과 만난 뒤 소셜미디어(SNS)에 이런 내용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정치권에서는 친명계가 정 대표 주도의 합당은 반대하지만, 다른 모양새의 합당은 원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라고 본다. 강 최고위원 측은 "보좌진의 실수로 올라간 글"이라고 해명했으나 삭제된 게시글에는 "대통령실이 다음주 통합과 연동된 이벤트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합당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정 대표는 리더십에 상처를 안게 됐다. 정 대표는 검찰개혁 등 개혁 입법을 둘러싼 당정 간 엇박자와 1인1표제 강행 등으로 친명계와 마찰을 빚어왔다. 여기에 3주 가까이 이어진 합당 논의가 소득 없이 끝나며 당내 피로감만 키웠다는 비판이 더해졌다. 이에 따라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치러질 차기 당대표 선거에서 정 대표의 대항마로 꼽히는 김민석 국무총리 쪽에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이번 합당 연기가 민주당 내부 권력 구도의 '변곡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에 조기 합당만 성사됐으면 정 대표의 연임은 그대로 꽃길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상황이 굉장히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1인1표제가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후반기에 유입된 친명계 당원들의 결속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며 "정 대표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암묵적 연대가 형성될 경우 전혀 예상 못 한 구도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선거 승리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거듭 주도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천신만고 끝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성공만을 생각하고 앞으로 지방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는 일만 하도록 하자"며 "더 이상 합당 논란으로 우리의 힘을 소비할 수 없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이제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고 했다.

반청계도 정 대표를 향한 견제 수위를 끌어올릴 태세다. 오는 12일 출범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에는 반청계로 분류되는 이언주·강득구·황명선 최고위원과 박찬대 전 원내대표 등 친명계 의원 70여명이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당 안팎에서는 앞으로 반청계가 세를 모아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당내 권력 투쟁의 분수령은 6월 지방선거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조국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를 매끄럽게 이끌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다면 정 대표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반대로 서울시장 등 주요 승부처를 내줄 경우 오히려 친명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더 뭉쳐 국정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결속이 강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