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강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부회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동행미디어 시대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무주택자가 내 집을 마련하도록 돕는 금융도 생산적 금융입니다. 주거 지원은 노동력 재생산을 뒷받침하는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임수강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부회장이 말하는 '생산적 금융'은 혁신기업이나 첨단산업 지원만을 뜻하지 않는다. 돈의 흐름이 경제 체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그는 '산업 순환' 흐름을 되살리고 '자산 순환'의 과잉을 제어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생산적 금융이라고 강조한다.

임 부회장은 주택금융 역시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이라고 해서 다 같은 성격은 아니다"라며 "무주택자의 첫 주거 마련을 지원하는 금융은 생산적 금융에 가깝지만, 다주택·초고가 주택에 레버리지를 얹는 금융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은 어디로 흘러야 하나"
임수강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부회장은 증권사와 은행 현장을 두루 거쳤다. 1988년 동서증권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뒤 은행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 금융 유관기관에서 근무하며 시장과 제도를 몸으로 익혔다.


2020년 경기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대표 경제정책인 '기본금융' 설계에 참여했다. 현재는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등 금융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최근 갑자기 떠오른 화두가 아니다. 2015년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뛰던 시기는 임 부회장에게 분기점이었다. 그는 당시 집값 상승을 단순한 경기 회복의 결과로 보지 않았다. 금리가 낮아진 환경에서 신용이 빠르게 풀리고, 그 자금이 생산·투자보다 부동산을 향해 흘러가도록 금융이 작동한 결과라고 봤다.

자금이 실물경제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 집값을 올리는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임 부회장은 금융의 방향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가 고민한 건 한 가지였다. 바로 돈의 순환. 임 부회장은 생산적 금융을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쪽으로 자금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흐름은 생산과 고용을 늘리면서 경제의 체력을 키운다. 반대로 비생산적 금융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기 어렵다. 돈이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리는 데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돈이 투자·고용으로 이어지게 하는 유인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부회장은 "산업 순환은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자산 순환은 이론적으로 한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자산 순환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보다 자산의 가격 상승과 담보가치 확대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자가증식' 구조를 뜻한다. 대출이 늘면 가격이 오르고, 오른 가격이 담보가치를 키워 추가 대출 여력을 만들면서 레버리지가 레버리지를 부르는 순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손대지 않은 채 '기업대출 확대'만 외쳐서는 은행이 굳이 '더 어려운 길'로 갈 유인이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생산적 금융은 '한쪽을 키우는 정책'이 아니라 "한쪽은 막고, 한쪽은 터주는" 조합이어야 한다고 임 부회장은 강조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을 계기로 '돈의 흐름'을 다시 묻기 시작한 그는 생산적 금융을 선택이 아닌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던진 과제로 진단한다.

그는 "금융 발전이 일정 수준까지는 성장에 기여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금융의 성장이 오히려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된다는 경험적 연구가 많다"고 말했다. 앞서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2024년 9월 보고서를 통해 민간 신용을 통한 성장 촉진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정 수준 이상이 되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취지다.

임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이미 그 정점을 지났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금융이 실물경제를 떠받치기보다 자산 가격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머물 경우 금융의 팽창이 곧 성장의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은행 규제, 오히려 완화된 편"
그렇다면 왜 이런 구조가 고착됐을까. 임 부회장은 그 출발점을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에서 찾았다. 대형 은행의 소유권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면서 은행의 공공성과 상업성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진단이다. 이 때부터 은행은 장기적 산업 육성보다 단기 수익성과 위험 회피에 초점을 맞추며 가계대출, 특히 주택담보대출에 집중해 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은행권 규제가 과도해 기업금융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임 부회장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규제가 심한 편이 아니라 오히려 완화돼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핵심 변수로 자기자본규제, 즉 위험가중치를 지목했다.

임 부회장은 "위험가중치 설계가 자금 흐름의 유인을 만든다"며 "기업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이 훨씬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은행이 그 쪽으로 쏠리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위험도를 정책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BIS가 각국에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는 만큼 조정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주담대 위험가중치 최저치를 상향한 흐름에 대해서도 "최소 25% 수준까지는 충분히 가능하고,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더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기업대출은 위험가중치를 낮추는 방향의 균형 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은행이 나아갈 길은…"
임수강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부회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동행미디어 시대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임 부회장은 생산적 금융 확대의 전제조건으로 은행의 산업 분석 역량 강화를 꼽았다. 임 부회장은 "담보를 잡기 어려운 기업에 신용대출을 하려면 결국 미래 수익을 평가하는 능력이 핵심"이라며 "부동산 담보대출이라는 손쉬운 수익 기회가 컸기 때문에 이러한 역량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계형 금융과 산업 전문 인력 확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관계형 금융은 금융회사가 기업 등과 거래할 때 신용등급, 재무비율 등 정보 외 지속적인 거래, 접촉, 관찰, 현장방문 등을 통해 얻은 정성적 정보를 이용하는 금융기법이다. 일본처럼 정부가 기업의 기초 정보를 수집해 은행에 제공하는 방식도 참고할 만한 사례로 언급했다.

혁신기업이나 초기 산업처럼 위험이 큰 구간에 대해서는 정책금융기관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떠안아 민간 자금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쉬운 부동산 담보대출에 주력하는 행태를 바꾸려면 한쪽을 막으면서, 다른 한쪽으로 자금이 흐를 수 있도록 인프라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 부회장은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 필요성도 제기했다. 한국은행법 개정 이후 물가안정 목표가 강화됐지만 물가 지표가 상품·서비스 가격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자산가격, 특히 부동산 가격은 정책 평가에서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그는 "돈이 풀려도 자산시장으로 흡수되는 흐름을 정책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며 자산가격을 고려하는 정책적 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실적 대안으로는 선별금리 확대를 제시했다. 특정 산업이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성 대출을 확대해 산업 순환을 강화하고, 자산시장으로 향하는 흐름에는 다른 규율을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의 본래 기능으로 돌아가야"
그는 은행의 역할을 다시 강조한다. 임 부회장은 "은행은 사회의 공동 자산을 관리하는 기구"라며 "의사결정은 사적으로 이뤄지지만, 그 결과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은행은 규제산업인 것"이라고도 했다.

생산적 금융이 작동하려면 무엇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까. 임 부회장은 주저 없이 은행의 영업 행태를 꼽았다. 손쉬운 부동산 담보대출에 집중하는 구조를 바꾸고, 리스크를 관리하며 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을 흘려보내는 역량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임 부회장은 "생산적 금융은 구호가 아니다"라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으로 자금이 흐르게 하는 것, 그게 금융의 본래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정부가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을 모토로 내건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제도적 틀을 제대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