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국은행은 '부문별 성장차별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2025년 하반기 이후 국내 경기가 회복 국면에 진입했지만,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제조업에 성장이 편중되는 양상이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IT 제조업과 여타 산업 간 성장률 격차(전년동기 대비 분기 평균 기준)는 2024년 하반기 5.0%포인트에서 2025년 상반기 8.2%포인트, 3분기에는 9.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한국은행은 올해 전체 성장률을 2.0%로 전망하면서도 IT 제조업을 제외할 경우 성장률은 1%대 초중반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부문 간 성장 차별화가 심화되면 경기와 물가 간 관계도 달라진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개선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이 특정 부문과 계층에 집중될 경우 총수요 확대 효과가 제한되면서 물가 반응이 약해질 수 있다. 이는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지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립스 곡선은 인플레이션 비율(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경제학 지표다.
실제 소비 경로를 보면 2023~2024년 중 고소득 5분위 가구의 평균 소득 증가폭은 736만원으로 다른 분위 가구를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고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MPC)은 중·저소득층보다 낮은 데다 최근에는 추가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소득 증가가 소비로 이어지기보다는 저축이나 자산 축적으로 흡수되면서 경기 개선이 총수요 확대와 물가 상승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약화됐다는 의미다.
임금 경로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상용직 임금은 꾸준히 상승했지만 임시일용직 임금은 건설업 부진 등의 영향으로 2024년 하반기 이후 감소세로 전환했다. 제조업 내에서도 IT 부문 임금은 크게 오른 반면 비IT 부문은 정체 양상을 보이며 격차가 확대됐다. 사업체 규모별로도 300인 이상 대규모 업체의 임금 상승폭이 소규모 업체를 상회했다. 동적요인모형(DFM)으로 추정한 결과 최근의 기조적 임금 상승 압력은 장기 평균을 하회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임금 격차가 확대될수록 전반적인 임금 상승 압력은 오히려 약화되는 패턴이 확인됐다.
경기와 물가 간 통계적 관계도 최근 들어 약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근원물가 상승률과 GDP갭률의 관계를 보면 2021~2022년에는 경기가 좋아질수록 물가도 뚜렷하게 오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2023~2025년 들어서는 경기가 개선돼도 물가가 그만큼 따라 오르지 않는 모습이 뚜렷해졌다.
실제로 이를 수치로 나타내는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도 팬데믹 초기에는 0.17로 의미 있는 수준이었지만, 2023년 이후에는 0.03까지 낮아지며 통계적으로도 뚜렷하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예전에는 경기가 살아나면 물가도 함께 뛰었지만 최근에는 그 연결고리가 느슨해졌다는 뜻이다.
IT와 비IT 산업 간 성장 격차에 따라서도 물가 반응은 달랐다. 두 부문의 성장률 차이가 크지 않아 비교적 균형적인 회복이 나타난 시기에는 수요가 늘어날 경우 물가도 이에 반응해 상승했다. 반면 반도체 등 IT 산업만 빠르게 성장하고 다른 산업은 부진한 '쏠림' 국면에서는, 같은 수요 충격이 발생해도 물가 반응이 크지 않았고 통계적으로도 뚜렷하지 않았다. 이는 특정 산업에만 성장이 집중될 경우 경기 회복의 온기가 경제 전반으로 퍼지지 못해 결국 물가를 밀어 올리는 힘도 약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중 경기 회복으로 수요 측 요인이 다소 확대될 가능성은 있으나 부문 간 성장 차별화는 경기 회복에 따른 물가 상승 강도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향후 물가 흐름은 유가와 환율을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수요 측면에서는 비IT 부문의 회복 여부가, 비용 측면에서는 반도체 가격 움직임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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