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이 안 낫겠나" vs "그래도 국힘이지예"…벼랑 끝 '보수의 심장'
[6·3지방선거 격전지 표심②]대구
대구=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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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9시, 대구 서구 비산동 염색산업단지. 빛바랜 작업복 차림으로 흰색 두루마리 원단을 매만지던 60대 노동자 김씨는 6월3일 지방선거 얘기를 꺼내는 기자에게 손사래부터 쳤다. "선거고 뭐고 관심 없심니더. 사는 게 이래 팍팍한데 국민의힘이고 (더불어)민주당이고 무슨 소용입니꺼"라며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보수의 심장' 대구는 절박했다. 지역 경기 침체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12·3 불법계엄 사태가 남긴 상흔과 지리멸렬한 보수 진영의 내홍은 '우파의 아성'에 균열을 냈다. 좌든 우든,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쪽에 표를 던지겠다는 게 대구의 바닥 민심이었다.
"한 달 일해 170만원인데 정당이 무슨 소용"…식어버린 공단 민심
1980년대 섬유산업 호황기, 대구 경제를 이끌었던 비산동 염색공단은 이제 대구에서 가장 노후한 산업지대 중 하나로 남았다. 이곳 노동자들의 관심은 거창한 정치 구호보다 당장 내일의 생계에 쏠려 있었다. 공장 앞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던 50대 여성 노동자는 "일이 없어서 강제로 쉬게 해놓고는 그날치 일당을 월급에서 홀라당 다 까버립니더"며 "한 달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쥐는 게 170만원도 안 되는데, 이걸로 어찌 삽니꺼"라고 했다.
그는 "옛날에는 공장 사람들도 '무조건 국민의힘' 했지예. 근데 인자 다들 입 꾹 닫고 삽니더"라며 "뭘 요구하면 정치인들이 들어주고, 또 그래야 뽑아주고 해야 하는데 그냥 깃발만 꽂으면 국민의힘 찍어주니까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 아이냐 이 말입니더"라며 울컥한 목소리로 불만을 쏟아냈다.
골목 어귀에서 담배를 물고 서 있던 40대 남성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예전엔 눈만 뜨면 국민의힘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은 그런 소리 잘 안 한다"고 했다. 다만 곧바로 "근데 민주당도 마음에 안 든다. 매번 민생지원금이니 뭐니 하면서 세금으로 돈 뿌리는 식은 싫다"며 "투표 안 할 것 같다. 어느 당이든 사람을 제대로 내세워야지, 자기들끼리 챙긴 사람 보내놓고 찍어달라 하면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했다.
비산동 염색공단을 지나 대구 원도심의 상징인 중구 서문시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민심의 결은 또 달랐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답게 이곳에선 여전히 보수 정당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이 읽혔다. 짭짤이 토마토 값을 두고 손님과 한참을 아웅다웅 실랑이하던 과일가게 주인은 "계엄도 민주당이 하도 몰아붙이니 한 거 아입니꺼"라며 "정부 예산도 다 잘라뿌고, 사람을 완전히 로봇처럼 만들어 놨는데 뭘 하란 말이고. 내는 저 사람들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 모퉁이 좌판에 양말을 늘어놓고 있던 70대 남성 장씨는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를 두고는 "사람은 좋고 점잖지예"라고 평가했다. 그는 "예전 대구시장 선거 때도 김부겸이 아무도 안 보는 데도 여기 와가 인사하고, 연설하고, 혼자 참 열심히 뛰대예"라면서도 "근데 사람이 점잖아가 민주당 안에 가면 패거리 정치에 힘을 못 쓴다 아입니꺼"라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입법 독재라예. 국회서 뭐가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전부 조작이라 카고, 검사들 다 부르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는 기라"고 했다.
반면 잡화점 주인 60대 여성 양씨는 "예전엔 국민의힘이면 무조건 밀어줬지예. 근데 요즘은 저 사람들끼리 맨날 싸우는 꼴 보이카이 정이 다 떨어집니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의석 수를 다 쥐고 있으니 국민의힘을 또 뽑아줘야 하나 싶다가도, 지난 세월 돌아보면 대구에 남은 게 뭐 있노 싶다"고 털어놨다.
'대구의 강남' 수성구는 '신중 모드'…"김부겸, 지켜봐야"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대표적 부촌, 수성구 일대의 바닥 민심은 특정 진영으로의 쏠림 없이 '로키'(Low-key) 모드였다. 맹목적인 국민의힘 지지보다는 "후보와 공약을 보고 마음을 정하겠다"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범어네거리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남성은 "김부겸은 좀 더 지켜봐야지예"라며 말을 꺼냈다. 그는 "수성구에서 국회의원도 했으니 인지도야 높지예. 근데 결국은 어떤 공약을 내놓고 그걸 진짜 실천할 수 있느냐를 봐야지예"며 "전에도 수성갑에서 당선되고 1년 만에 장관으로 가삤잖아예"라고 했다.
김부겸 후보는 16~18대 총선에서 경기 군포에서 3선을 지낸 뒤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대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2012년 19대 총선 수성갑,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마침내 수성갑에 깃발을 꽂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중앙으로 떠난 바 있다.
김부겸 후보를 향한 지지세의 기저에는 '대구 경제 살리기'에 대한 절박함이 깔려 있었다. 저녁거리를 사러 나왔다는 60대 여성은 "(김부겸 후보가) 여기서 국회의원도 해봤으니 수성구를 발전시켜 주지 않겠나"며 "대구에 뭐라도 해주겠다 카는데 그게 안 낫겠나 싶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내 "근데 나 혼자 뽑는다꼬 당선이 될지는 모르겠다. 동네 산책 나가보면 '이번엔 투표 안 하겠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며 딸기 팩을 한참이나 들었다 놨다 하다 자리를 떴다.
대구는 박정희 정권 시절 섬유 산업을 앞세워 한국 수출 산업의 핵심 축을 담당했던 도시다. 그러나 이후 산업 전환에 실패하면서 지역 경제는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2024년 잠정치 기준 3137만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다. 1993년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한 번도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안으로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수성구 한 상가 앞에서 만난 60대 남성 이씨는 "추경호는 우예 된다 카노"라고 되물었다. 그는 "추경호가 나오면 찍어야지예"라며 "추경호가 제일 점잖고 괜찮습니더. 경제도 잘 안다 아이가. 경제 박사라는데 그래도 그런 사람이 하는 게 낫지예"라고 했다.
공공기관과 첨단의료복합단지가 들어선 대구의 대표적 신도심, 동구 혁신도시 인근에서 만난 유권자들 사이에선 "대구가 늘 보수정당에 표를 몰아준 만큼 제대로 대접받았느냐"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국민의힘을 향한 반감이 적잖게 감지됐다. 직장인 30대 위씨는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계속 국민의힘에 표를 몰아줬는데 막상 사는 사람들은 체감하는 게 별로 없었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고 김부겸 정도면 한 번 찍어볼 만하다고 본다"고 했다.
대구 시내 곳곳에선 "국민의힘도 이제 싸움질만 할 게 아니라 협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고물가와 내수 부진, 장기화한 지역 경기 침체 속에 시민들의 관심은 이념보다 민생으로 옮겨가는 모습이었다. 달서구에 산다는 20대 은행원 박씨는 "원래 국민의힘 지지하는 편인데 하도 싸우기만 하니까 정치에 관심을 끊어버렸다"며 "뉴스도 보기 싫고, 다 보기 싫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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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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