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7년간 신정체제의 정점에서 이란을 철권 통치한 인물이 사라지면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출신의 강성 인사나, 다른 파벌의 강경파 인사가 권력을 잡으려 나설 전망이다.
가디언은 1일(현지 시각)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가족 구성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이 하메네이의 주거지에 집중되면서 하메네이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함께 폭사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는 하메네이의 주거지를 파괴하고 혁명수비대 지휘관들과 고위 핵 관리들을 죽였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현지 시각)께 소셜미디어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사람 중 한 명인 하메네이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지 15시간 여만이다.
하메네이는 1939년 4월 19일 이란 북동부의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가문의 후손이다. 1958년 시아파 성지인 이란 서부 도시 곰으로 이주해 루홀라 호메이니에게서 신학을 배우며 함께 정치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메네이가 공직 생활을 시작한 건 1979년부터다. 그는 호메이니와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팔레비 왕조를 폐지한 뒤 이슬람공화국을 세웠다. 호메이니가 초대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그는 국방차관에 등용됐다.
하메네이는 97%를 득표하며 3대 대통령이 됐다. 이란의 첫 성직자 출신 대통령이었다. 그는 취임 연설 때 "일탈과 자유주의, 그리고 미국의 영향을 받은 좌파"를 제거 대상으로 천명했다. 재선에 성공해 1989년까지 재임했다.
호메이니가 1989년 노환으로 사망하자 2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이란에서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권력의 정점이다. 대내 정책의 최종 결정·집행 감독권, 각종 선거 승인권뿐 아니라 사법부 수장, 국영 매체 경영진, 대통령·내각의 임면권, 사면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하메네이는 한때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외 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7년 이란 대선에서 개혁파 진영의 모하마드 하타미가 승리하자 체재를 지탱하는 이념을 지켜내려 하면서도 하타미에게 일정 재량을 부여했다. 또 2001년 9·11 사태 당시 하타미 대통령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 하자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를 금지한다는 파트와를 직접 발표했다.
2010년에도 "핵무기를 포함해 화학무기, 생화학 무기와 같은 WMD는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평화적 사용의 핵물질 사용만 하겠다고 공표했다. 2015년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과 타결지은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이행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는 여성, 종교적 소수자 등을 탄압했다. 1999년 개혁파 신문 살람이 폐간된 데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 반발하는 시위,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 의문사 관련 반정부시위 등을 강경 진압했다.
특히 이란의 핵 개발과 이에 따른 서방 제재에 대한 테헤란 상인들의 반정부시위가 거세지자 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한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최대 3만6500명이 숨졌을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다. 이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개입을 시사하며 핵 협상 재개를 종용했다.
이란의 2인자는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와 행정부 역할을 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다. 하메네이의 죽음에도 그는 최고지도자직을 자동 승계하지 않는다. 하메네이는 최근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을 자신의 유고 시 권력을 대리할 인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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