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그래픽=시대
"농협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다."
지난해 12월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지적 이후 농협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국 200만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는 조직이지만 중앙회장은 1110명의 지역 조합장이 선출하는 구조가 금품선거와 내부 비리의 배경으로 지목되면서 당정이 선거 제도와 내부통제 전반을 손질하는 개혁에 나섰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1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농협개혁 추진방안'을 논의하고 관련 법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개혁안은 지난해 농식품부 특별감사와 국무조정실·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이 참여한 정부 합동 감사에서 드러난 농협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혁안의 핵심은 크게 ▲내부통제 강화 ▲운영 투명성 제고 ▲선거 제도 개편 세 가지다. 우선 범농협 차원의 통합 감사기구 '농협감사위원회'를 신설해 중앙회 내부에 있던 중앙회·조합·지주회사 등에 대한 감사 기능을 통합 수행하도록 하되 별도의 특수법인을 설치해 사각지대 없는 독립적 감사 기능을 수행하도록 할 예정이다. 중앙회 준법감시인을 외부 전문가로 의무 임명하고 금품수수나 횡령 등 범죄행위에 대해 고발을 의무화하는 등 책임성을 강화한다. 농식품부의 지도·감독 권한 역시 기존 중앙회와 조합에서 지주와 자회사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운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된다. 중앙회장의 지주·자회사 경영 개입을 제한하고 겸직을 금지하는 한편 인사추천위원회 외부위원 확대 등을 통해 인사 과정의 공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또 중앙회와 조합 운영 정보를 조합원에게 공개해 조합원 중심의 통제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회원조합 지원자금(무이자 자금)의 재량적 배분 문제도 손질된다. 자금 운용 시 재무 건전성을 고려하도록 하고 농식품부 사전 보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한 조합과 조합원이 참여하는 '농협발전 심의위원회'를 통해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평가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번 개혁안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중앙회장 선거 제도 개편이다. 현재 농협중앙회장은 1110명의 지역 조합장이 투표로 선출한다. 투표권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는 구조 때문에 선거 때마다 금품 제공 등 금권선거 논란이 반복돼 왔다.

당정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회장 선거에 조합원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합원 직선제'와 '선거인단 제도 ' 등 다양한 개선안을 검토한 뒤 지방선거 이전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품선거 근절을 위해 금품 제공자와 수수자에 대한 처벌과 과태료 수준도 강화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개혁을 농협 지배구조 개편의 '1단계 조치'로 보고 있다. 농협개혁 추진단은 향후 경제사업 활성화와 도시농협 역할 강화, 조합 경쟁력 확대 등을 포함한 2단계 개혁안도 추가로 마련할 예정이다.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지만…지배구조는 '구멍'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업협동조합(농협) 개혁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
농협중앙회는 1961년 농업은행과 농협 조직이 통합되며 출범했다. 이후 경제·금융·교육지원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지만, 거버넌스 체계는 과거 협동조합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소수에게 집중돼 있는 중앙회장 선출 구조는 권한 집중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정부 합동 특별감사 결과를 계기로 더 커졌다. 특별감사에서는 농협중앙회와 계열사 전반에 걸쳐 횡령, 금품수수, 특혜성 대출, 채용 비리 등 각종 비위 행위가 적발됐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개별 사건을 단순한 일탈로 보기보다 폐쇄적 선거 구조와 견제 장치 부재가 반복적 비위를 낳는 구조적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감사에서는 농협 수뇌부의 비위 의혹이 보다 구체적인 사례로 확인됐다. 재단 핵심 간부가 사업비를 유용해 현 중앙회장 선거를 도운 인사들에게 답례품과 골프대회 협찬비를 집행한 사실이 적발됐고, 회장실과 부회장실로 전달된 고가 기념품의 지급 대상과 사용처도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 중앙회장의 황금열쇠 수수 의혹과 핵심 간부의 사업비 사적 유용 정황까지 더해지면서 단순한 일탈을 넘어 조직 상층부의 구조적 기강 해이가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96건에 달하는 제도 개선과 시정 조치를 병행해 농협 운영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손질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중앙회장과 핵심 간부 등의 공금 유용 의혹, 특혜성 대출·수의계약, 회원조합 분식회계 등 중대 사안 14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셀프 쇄신' 나선 농협…개혁 효과는
정부와 여당의 개혁 드라이브에 맞춰 농협 내부에서도 자체 쇄신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농협개혁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고 선거제도와 인사, 내부통제 전반을 손질하는 자체 개혁안을 마련했다. 외부 개혁 압박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 내부에서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체 개혁안은 금권선거 차단과 인사 공정성 제고, 내부통제 강화에 방점이 찍혔다. 선거 부문에서는 선거비용 보전 제도를 도입하고 정책토론회와 권역별 합동연설회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또 불법 선거운동을 사전에 포착하기 위한 부정선거 자동감시 시스템 도입과 선거법 위반자에 대한 제재 강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인사와 내부통제 분야에서도 손질이 예고됐다. 퇴직 임직원의 재취업 제한을 강화하고 인사추천위원회 외부위원 비중을 확대해 공정성을 높이는 한편, 외부 전문가 중심의 범농협 준법감시위원회를 신설해 윤리경영과 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핵심 쟁점인 중앙회장 선출 방식을 둘러싸고는 내부 이견이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조합장 직선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사회 호선제, 조합원 직선제 등 다양한 대안이 함께 제시되면서 추가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출방식 입장차... 내부서도 "강력한 제도적 보완장치 있어야"
정부·여당이 조합원 참여 확대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과 달리 농협 내부에서는 선출 방식 자체를 두고도 입장차가 드러난 셈이다. 농협 관계자는 "다만, 내부에서는 어느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회장 권한 축소 등 강력한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시스템 전반에 대한 고강도 쇄신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제도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수뇌부의 인적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전종덕(진보당·비례대표) 의원이 "분골쇄신의 자세로 개혁한다면 사퇴하고 자리에서 내려와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강 회장은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어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책임지겠다"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개인적인 일탈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미 책임지는 모습의 일환으로 농민신문사 회장직을 내려놓았고, 호화 출장비 논란에 대해서도 환급 조치를 완료했다"며 "농협 개혁 차원에서 철저히 환골탈태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고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