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와 외국인 자금 순유출 등으로 원화 약세 압력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사진은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을 보여주는 지도. /사진=로이터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2월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이탈이 월간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원화 약세 압력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2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은 순유출로 전환됐다. 외국인 주식자금은 인공지능(AI) 투자 관련 경계감 확대와 국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 매도 등의 영향으로 135억달러(약 19조9530억원)가 유출됐다. 월간 기준 최대 규모의 유출이다. 코로나 폭락장세 초기였던 2020년 3월(110억4000만달러) 보다도 많다.

외국인 자금 이탈과 함께 환율 변동성도 확대됐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원화는 주요 통화 대비 약세 흐름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일 1453원에서 3일 1480원까지 오른 이후 1460~1480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높은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예상보다 길어져…평균 환율 수준 1475원 정도 상향"
시장에선 최근 환율 상승 압력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민주 ING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현재 글로벌 달러 강세와 자본 유출 흐름이 겹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450~1550원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은 환율 전망의 변수로 꼽힌다. 글로벌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와 지속 기간이 시장의 주요 리스크로 지목된다. 강 이코노미스트는 "기존에는 해협 봉쇄가 약 2주 정도 지속된 뒤 부분적으로 통행이 재개될 것으로 봤다"며 "하지만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봉쇄 기간이 한 달가량으로 길어질 가능성도 있어 유가와 환율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경우 환율 예상 범위도 상향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기존에는 봉쇄가 2주 정도 지속된 뒤 상황이 정상화되면 환율이 1450원대까지 내려올 것으로 봤다"며 "현재는 평균 환율 수준을 1475원 정도로 상향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외환시장 안정성 높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 필요
최근 외국인 자금 유출은 국내 증시의 단기 조정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코스피가 큰 조정 없이 상승세를 이어온 만큼 차익 실현 매도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강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증시가 다른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였던 만큼 이에 대한 조정이 나타난 측면이 있다"며 "기업 실적이나 펀더멘털이 크게 훼손된 상황은 아니어서 구조적인 자금 유출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일부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과잉 투자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AI 인프라 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흐름은 유지되고 있어서다.

그는 "유가 상승이 이어지더라도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 자체가 꺾이는 상황은 기본 시나리오로 보지 않는다"며 "다만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기업 심리가 위축될 경우 투자 흐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했다.

수출 측면 관련 강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반도체 수출이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고 가격 상승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반도체 중심의 성장 흐름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장은 "글로벌 교역 환경 불확실성에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경기가 큰 폭의 호황을 지속하고 있다"며 "수출은 1월 전년동월대비 33.8% 증가한 데 이어 2월에도 29.0%의 높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달러 강세와 자본 유출 흐름이 맞물리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강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 자금 유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 환율 상단이 열릴 수 있다"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될 경우 원/달러 환율 상단을 1570원 수준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대응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환율 및 외환수급 안정화를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국내 주식시장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 가시적 성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