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직접 발행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하는 한편, 송금·결제 및 자산 간 교환(스왑) 기능까지 포함한 지갑 서비스 구축을 내부적으로 논의해왔다. 핀테크, 가상자산 거래소, 빅테크 등과의 협업 가능성도 열어두고 플랫폼 확장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다만 사업 추진 속도는 다소 늦췄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디지털자산 기본법 논의가 일시적으로 홀딩되면서 타행 역시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습"이라며 "컨소시엄 참여 준비보다는 자체 사업모델(BM)에 대한 PoC(개념검증), 발행준비금 수탁, 고객 신원 확인(KYC)·자금세탁 방지(AML) 체계 구축 등 은행 본연의 신뢰 확보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대기 상태'라기보다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디지털자산은 준비금 관리와 자금세탁방지 체계 등 신뢰 기반이 핵심인 만큼, 제도화 이전 단계에서 해당 역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초 주요 시중은행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지갑 서비스 출시 등을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은행권 내부에선 컨소시엄 참여, 송금·결제 기능 확대 등 구체적인 사업 구상까지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디지털자산 기본법 논의가 일시 중단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업계 전반이 속도 조절 국면에 들어가면서 외형 경쟁보다 내실 다지기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신한은행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오는 6월 출시 예정인 '슈퍼SOL'에 코인 지갑 기능을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초기에는 기능을 제한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환경과 거래소 협업 상황에 따라 향후 송금·결제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하나은행은 "그룹 차원의 TF(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주요 관계사 간 방향을 공유하며 대응하고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해 예금토큰, 토큰증권(STO) 등 업권별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참여 형태나 일정 등은 아직 확정된 바 없으나 글로벌 흐름에 맞춰 컨소시엄 기반 협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요 사업자들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KB국민은행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금융사, 핀테크, 유통업체 등과 다방면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향후 디지털자산기본법 등 법제화 방향에 따라 은행권 중심의 발행 컨소시엄이 구성된다면, 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법정화폐 간 교환 인프라를 담당할 것"이라며 "그룹 내 증권·보험 등 금융 계열사는 자산 유통과 투자 서비스 측면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로마트 등 농협이 보유한 유통 네트워크는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결제 환경과 연결하는 데 의미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뢰 인프라 구축 관련해 농협은행은 "단순히 제도 논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지급결제 인프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은행권은 '개발은 선행하되 서비스는 규제에 맞춘다'는 전략 아래, 내부 기술 검증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먼저 완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발행 준비금 수탁, KYC, AML 체계 고도화 등 전통 금융기관의 강점이 향후 디지털자산 시장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은 '바람직한 디지털화폐 생태계의 모색'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 투자자산을 넘어 송금과 결제를 아우르는 차세대 지급결제 인프라로 평가된다"며 "다만 현재 구조에서는 청산·결제 완결성과 규제 체계가 미비해, 제도 정비와 함께 금융기관의 신뢰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 통과 시점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서비스 출시보다 '언제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제도화가 이뤄지는 순간 준비된 플레이어가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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