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이 생산 현장과 데이터를 제공하고, 플랫폼 주도권은 엔비디아가 쥐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엔비디아 기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자체 모델 개발과 서비스 운영 역량을 키우고, 한국형 AI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젠슨 황 CEO는 방한 기간 대중 친화적 행보에 집중했다.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공개적으로 'K-푸드' 회동을 가졌으며, 해당 자리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사인을 해주거나 치킨을 나눠주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했다. 프로야구 시구와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녹화에도 참여했다.
이 같은 행보는 단순한 팬서비스를 넘어 향후 엔비디아 생태계 확장을 위한 포석으로 관측된다. 엔비디아와 우리나라는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의 PC방과 e스포츠 문화는 엔비디아의 초기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 젠슨 황 CEO는 "한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엔비디아도 없었다"며 '한국은 엔비디아의 심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행보는 25년 넘게 이어진 한국과의 정서적 서사를 강화하는 동시에, AI PC와 RTX 50 시리즈 등 소비자 제품 시장 확대의 교두보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엔비디아의 생태계 확장이 소비자 제품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AI 산업이 칩 성능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플랫폼 주도권 싸움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엔비디아는 CUDA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CUDA는 엔비디아가 개발한 병렬 컴퓨팅 플랫폼이자 프로그래밍 모델로, GPU가 대규모 연산을 초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업과 개발자가 CUDA에 맞춰 AI 모델 학습·추론 코드와 서비스 운영 구조를 구축하면 다른 GPU로 전환하기 어렵다. 코드 수정과 성능 최적화, 인력 재교육 등에 막대한 추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AI 개발 환경은 대부분 CUDA를 기반으로 구축돼 있어 엔비디아 의존도가 높다. 구글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엔비디아 GPU와 소프트웨어 종속을 우려해 자체 AI 반도체 개발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구축한 생태계를 단기간에 흔들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피지컬 AI로 협력이 확대될 경우 엔비디아 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피지컬 AI는 AI가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한 뒤, 로봇이나 제조 설비 등을 통해 실제 물리적 행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를 구현하려면 제조 현장과 로봇 운영 과정에서 나오는 데이터, 시뮬레이션, 학습·검증 소프트웨어 등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들이 엔비디아 플랫폼에 제조와 로봇 운영 데이터를 축적할 경우 초기에는 모델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CUDA와 같은 '락인(lock-in)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문형남 숙명여대 융합국제학부 교수는 "엔비디아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협력'과 '종속'을 구분하는 전략"이라며 "GPU는 엔비디아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데이터는 국내에 두고, AI 모델 개발과 서비스 운영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주도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기업은 한국어 특화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법률·행정·교육·의료 등 주요 분야별 소버린 AI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국내 AI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AI 강국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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