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요청으로 무대에 올라 이같이 말했다. 황 CEO가 방한 기간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을 잇달아 만나며 화려한 협력 구상을 쏟아냈지만 막대한 전력 인프라 비용과 실현 가능성 등 한국 측이 떠안아야 할 청구서가 만만치 않다는 속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젠슨 황 CEO가 제시한 핵심 협력 카드는 SK·네이버와 구축할 '기가와트(GW)급 AI 팩토리'다. AI 팩토리는 전력과 데이터를 원료로 삼아 AI의 핵심 단위인 '토큰(Token)'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지능형 공장이다. 범용 컴퓨팅과 데이터 스토리지에 국한됐던 기존 데이터센터를 뛰어넘는 차세대 개념이다. 여기에는 엔비디아의 최신 'DGX'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세대 GPU인 '블랙웰'과 하반기 선보일 '베라 루빈' 플랫폼이 적용된다.
로드맵에 따르면 SK텔레콤과의 협력 모델은 2027년 국내에서 첫 가동을 시작해 아시아 전역으로의 확장을 노린다. 네이버 역시 글로벌 핵심 파트너로 참여해 2027년 상반기 초거대 인프라 조성을 위한 첫걸음을 뗄 계획이다.
황 CEO는 방한 기간 모빌리티와 로보틱스를 아우르는 '피지컬 AI' 협력도 가시화했다. LG그룹과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훈련 플랫폼인 '아이작(Isaac)' 및 '그루트(GR00T)' 생태계를 기반으로 레퍼런스 로봇 공동 개발을 본격화하며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 전반에서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동맹 전선은 국내 게임사로도 확장됐다. 황 CEO는 7일 크래프톤·엔씨 수장과 만나 피지컬 AI 및 AI 인프라 협업을 논의했다. 두 게임사는 최근 로보틱스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기술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루도 로보틱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사업을 본격화했고 엔씨는 자회사 'NC AI'를 통해 로봇 지능의 핵심인 '월드 모델' 시연에 성공했다.
국내 데이터센터는 노후화된 설비와 단절된 구조 탓에 글로벌 스마트팩토리 수준에 뒤처져 있다. 엔비디아의 청사진을 구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디지털 트윈과 자율 제어 기술 도입도 시급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에너지다. 현재 수도권 전력망은 이미 포화 상태다. 지방의 신규 송전망 건설은 인허가 문제와 주민 반대로 단기간 내 완공이 불가능하며 막대한 열을 식힐 냉각수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에 추진되는 GW급 AI 팩토리는 국내 최대 규모인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각 세종'보다도 수십 배 이상 큰 규모여서 추가 거점 확보조차 불투명하다.
리스크와 인프라 비용 역시 국내 기업과 정부가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차세대 GPU 서버의 랙(Rack)당 전력 소비는 기존 대비 4~5배 수준으로 폭증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한국이 도입을 추진 중인 GPU 26만 장(약 3600랙) 가동에 필요한 전력은 냉각 손실을 고려할 때 500~600메가와트(㎿) 규모에 달한고 분석했다. 원자력 발전소 1기의 최고 발전 용량(1GW) 절반을 넘는 수치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독자적인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엔비디아나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된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센서와 로봇, AI 플랫폼 간의 상호운용성을 보장할 정부 주도의 표준화 컨소시엄을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과기정통부는 데이터센터 전력 전용 요금제 신설 등 제도적 지원책을 조속히 마련하고 피지컬 AI 사업에 34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에너지 인프라 확충이 선행되어야만 황 CEO가 던진 '선물 보따리'가 비로소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역시 엔비디아가 제시한 청사진을 구현하기 위해 정교한 우회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과거 데이터센터 구축 당시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전력 소모로 인한 주변 지역의 환경 영향이었기 때문에 주거지 인근에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어려웠다"며 "현재는 마이크로 데이터센터 등 기술적 대안이 마련돼 당시의 규제와 제약이 일부 해소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러한 선제적 대안이 수립되어야만 GW급 초거대 인프라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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