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생산기지였던 중국이 정부 지원과 기술 혁신을 앞세워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면서 한국 산업의 최대 경쟁자로 떠올랐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한국과 중국의 무역 관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 한국 기업의 생산기지에 불과했던 중국은 이제 자체 기술력을 갖춘 제조 강국으로 성장해 한국 산업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올랐다. 한국은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중국에 공급하지만 자동차와 스마트폰, 가전 같은 완제품 시장에서는 현지에서 입지를 빠르게 잃고 있다. 중국은 자국 기술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완제품 경쟁력을 키우며 한국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부품은 한국이 공급하고 완제품은 중국이 판매하는 역전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韓, 중간재 수출하고 中서 완제품 수입 '역전 현상'
산업통상부의 '2026년 6월 및 상반기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중국 수출은 996억달러(한화 약 148조원), 수입은 861억달러(128조원)로 135억달러(20조원)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대중 무역수지가 111억달러(17조원) 적자였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흑자로 바뀌었다.
흑자 전환 배경에는 반도체가 있다. 상반기 대중국 수출 가운데 반도체는 547억달러(81조원)로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대중 수출은 449억달러(67조원)에 그쳐 같은 기간 수입액 861억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대중 수출의 절반은 중국 제조업에 투입되는 중간재다. 지난해 말 기준 대중국 수출 상위 품목은 전자집적회로(IC), 반도체·전자기기 부품, 환식탄화수소, 반도체 웨이퍼, 평판디스플레이 모듈이었다. 이들 5개 품목이 전체 대중 수출의 49.3%를 차지했다. 과거처럼 자동차나 스마트폰, 가전 등 한국 브랜드 완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아니라 중국 공장을 움직이는 핵심 부품 공급처 역할로 바뀐 것이다.
2026년 1분기 기준 중국 전기차 및 스마트폰 내수 시장 점유율. 전기차는 BYD가 19.8%로 1위, 스마트폰은 화웨이가 20%로 선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기타(0%대 추정), 현대자동차는 순위권 밖으로 집계됐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한국 완제품의 중국 시장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2016년 중국에서 179만대를 판매하며 정점을 찍었지만 지난해 판매량은 19만6746대, 점유율은 0.83%까지 떨어졌다. 2017년 사드(THAAD) 갈등 당시부터 시작된 판매 부진은 중국 토종 브랜드의 성장과 맞물리며 장기화했다.
스마트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과 출하량 1위를 다투지만 중국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 중국 시장은 화웨이와 애플, 샤오미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한국 완제품은 중국에서 팔리지 않는데 한국 부품은 중국 완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화웨이와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폴더블폰을 출시할 때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모바일 D램·낸드플래시가 상당수 탑재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대중 부품 수출이 늘어나지만 그 부품이 중국 기업의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려 결국 한국 완제품의 글로벌 시장을 잠식하는 역설적인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중국이 한국 기업의 생산기지였다면 이제는 기술 경쟁자로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중국제조 2025' 등을 통해 기술 자립도를 높이면서 배터리와 전기차, 디스플레이 등 한국 주력 산업에서 기술 격차를 크게 좁히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역전, 국가가 설계한 산업정책의 결과
중국이 제조 강국으로 도약한 배경에는 막대한 보조금과 공급망 육성 등 국가 차원의 산업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6' LG에너지솔루션 뷰스에 전시된 배터리 실물. /사진=뉴스1
이 같은 역전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장기 산업육성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산업에 대규모 구매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했다. 실제로 BYD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신에너지차 구매보조금으로 약 41억7500만달러(6조원), 직접 보조금으로 약 9억2000만달러(1조4000억원)를 지원받았다. 지방정부의 공공조달과 택시·버스 보급 사업에서도 자국 업체 중심의 정책이 이어지면서 해외 업체들의 시장 진입은 제한적이었다.
배터리 산업에서는 정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화이트리스트'를 운영하면서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산 배터리 채택을 사실상 막았다. 중국은 광물 가공부터 배터리 셀·팩까지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며 가격 경쟁력도 끌어올렸다.


김대종 교수는 "배터리 화이트리스트와 보조금 정책은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을 사실상 차단했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5년 반도체 자급률 목표를 70%로 제시하고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세 차례 조성했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조성된 기금 규모는 총 1조3311억위안(290조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장비 국산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반도체 생태계 육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며 D램은 1~2년, HBM은 2~3년 격차에 불과하고 파운드리도 EUV(극좌외선 노광장비)만 확보하면 곧바로 따라올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자동차 분야에서 '15차 5개년 계획'에 맞춰 해외종합서비스플랫폼을 구축하고 법률·세무·금융·물류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며 완성차 업체들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승용차 수출량은 2025년 574만대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5월에만 전년 동기 대비 66.8% 증가한 337만대를 기록했다.

전병서 소장은 "중국 제조업은 반도체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분야에서 한국을 추격하거나 앞섰다"며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한국도 전략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