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왼쪽에서 셋째)이 신임 총사령관 미하일로 드라파티(오른쪽 끝)와 그의 전임자인 올렉산드르 시르스키(왼쪽에서 둘째), 그리고 국방장관 권한대행인 에브게니 하마라(왼쪽 끝)와 만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7월 22일 공개한 사진이다. /로이터=뉴스1

러시아와 4년 이상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젊은 국방부 장관이 해임되자 전국적인 시위가 터지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디지털 전문가인 미하일로 페도로프(35)는 올해 1월 국방부 장관을 맡아 러시아에 대한 성공적인 드론 작전을 펼쳐 왔지만 6개월 만인 7월 15일 사실상 해임됐다. 정부 쇄신 차원에서 율리아 스비리덴코 총리가 물러나고 내각이 총사퇴했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페도로프를 재임용하지 않은 것이다.
해임의 표면적 이유는 드론 중심의 작전과 군 개혁을 내세운 페도로프가 전통적인 지상군 작전과 조직 안정을 중시하는 올렉산드르 시르스키(60) 총사령관과 충돌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젊은 층이 페도로프를 개혁과 반부패의 상징으로 여기고 그의 해임을 부패 세력의 반개혁 행보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페도로프의 해임 직후 전국적으로 그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이유다.

시위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젤렌스키 대통령은 페도로프와 대립했던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엿새만인 7월 21일 해임했다. 또 시르스키의 후임으로 페도로프와 함께 군 개혁을 추진했던 미하일로 드라파티를 임명했다. 젤렌스키는 페도로프에게도 다른 요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복직을 요구하며 일단 사양한 상태라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젤렌스키로서는 인기 높은 젊은 장관을 내치려다 정치적 역풍을 맞은 셈이다.


이 모든 사태는 반부패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연말 시작된 에너지 부문의 부패 스캔들로 올해 1월 법무부·에너지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임한 것이다. 유럽연합(EU) 가입이 절실한 우크라이나로선 가입 조건 중 하나인 부패 방지 기준을 맞추는 일이 급선무였다. 페도로프는 이 사건 이후 국방장관으로 입각했고. 군 출신의 강직한 인물 키릴로 부다노프 전 군사정보국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용됐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눈에 페도로프가 군 개혁과 반부패의 희망으로 비친 이유다.

해임된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 /로이터=뉴스1

<드론으로 러시아 깊숙이 타격…전쟁영웅 된 디지털 전문가 페도로프>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페도로프와 시르스키는 전쟁의 방식과 국민, 그리고 기술을 대하는 방식에서 상반된 리더십을 보여 왔다. 옛 소련군 출신인 시르스키는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에게 높은 사상률을 감수하더라도 포병과 보병 등 지상군 중심의 돌격전을 선호하는 구시대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소련식 군사 문화를 상징하는 장군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페도로프는 개혁과 기술 중심의 젊은 군사 문화를 상징한다. 디지털 차관과 국방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개혁을 제안했고 실제 실행으로 옮겼다. 군사적으로는 비대칭적이고 기술 중심적인 전쟁 접근 방식을 도입해 성과를 거뒀다. 드론 자체 생산 시스템을 확대해 드론을 포탄처럼 쓰면서 러시아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상자를 최소화하는 전쟁 방식이다.

해임된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 /로이터=뉴스1

뉴욕타임스와 우크라이나 국영통신사 등 외신에 따르면 페도로프는 인공지능과의 통합, 저비용 대량생산 확대, 제조와 조달의 분산화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력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왔다고 한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동안 우크라이나가 드론 전력을 중심으로 첨단 방산 강국으로 도약한 데는 그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다. 또 드론 조종 요원이 안전한 후방 지휘 센터에서 공격과 요격 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되면서 인력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투기술의 과학화를 이루고 사상자가 줄면서 우크라이나군과 국민의 사기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페도로프는 올해 국방장관 취임 직후부터 전술적 초점을 적의 작전 지속 가능성을 약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중거리 및 장거리 드론 시스템을 중점 개발해 적의 후방 깊숙한 곳에 있는 에너지·물류 시설과 보급로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올해 본격화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후방 장거리 타격 작전은 군사적인 효과는 물론, 러시아 대중을 동요시키고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치적 입지를 좁히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페도로프 전 국방부 장관의 복직 요구 시위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7월 18일 벌어지고 있다. /로이터=뉴스1

<군수혁신으로 부패의 싹을 잘랐다는 평가>
그는 군수 부문에서도 혁신을 이뤘다. 최전선에서 적과 직접 교전하는 장병이 작전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선택하고 주문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군부대와 기술 스타트업 및 무기 제조업체를 직접 연결하는 방산 플랫폼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관료주의적 개입 여지가 있는 군수 입찰 절차를 우회하거나 단계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페도로프는 이런 개혁으로 오랫동안 부패한 고위층들이 악용해 온 불투명한 조달 시스템을 무너뜨린 걸로 평가받는다.
페도로프는 일론 머스크 측과 담판해 과거 러시아군이 무단 사용하던 스타링크 단말기를 폐쇄하고 러시아의 통신·정보 능력도 틀어막았다. 군인 급여 인상, 기간제 근무 시스템 도입, 무단 이탈 방지와 해결 방안도 준비했다. 하지만 이를 시행도 하기 전에 해임됐다. 미국 시사 경제지 포브스는 그런 페도로프에 열광했던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은 그가 제대로 일을 해보기도 전에 해임되면서 인명 손실과 부패를 줄일 개혁이 사장되거나 지연될 것이라는 좌절감에 빠졌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면엔 치열한 권력다툼의 그림자젤렌스키의 경쟁자 무력화인가>
이처럼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과 총사령관 교체 사태는 겉으로는 전쟁과 국가 통치 방식을 둘러싼 구세대 장군 시르스키와 신세대 관료 페도로프 간의 갈등으로 비친다. 하지만 한 꺼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치열한 '권력 다툼'이라는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페도로프 국방부 장관과 지난 1월 만나는 모습. /로이터=뉴스1

2019년 5년 임기 대통령에 취임한 젤렌스키는 2024년 3~4월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선거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계엄령하에서는 대선을 치를 수 없게 한다. 지난 5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67%는 전쟁이 끝나면 젤렌스키가 교체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전시 지도자로서 젤렌스키의 차기 대선 선호도는 비교적 높다. 지난 6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선이 즉시 실시된다면 유권자의 32%가 젤렌스키에게 투표할 것으로 나타났다. 젤렌스키 외에 차기 대선후보로 가장 유력한 발레리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의 지지율은 16%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젤렌스키가 2024년 2월에도 잘루즈니를 총사령관에서 해임하고 그해 7월 주영국 대사로 내보냈다는 사실이다. 잘루즈니의 지지율은 가장 높을 때 25%까지 기록했다. 일각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동안 잠재적인 정치적 경쟁자를 해임이나 회유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무력화하려고 시도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번 페도로프 해임 배경에도 이런 보이지 않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출신의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국 대사가 공격용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뉴스1

페도로프가 대통령 출마 의사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대중적 인기와 정치적 입지는 훨씬 커진 것은 분명하다. 최근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그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지난 6개월 동안 38%에서 50%로 올랐다. 젤렌스키에 대한 신뢰도는 61~62% 수준으로 여전히 높지만, 변화는 없는 상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신뢰와 지원이 필수적인 우크라이나로선 이번 사태를 신속하게 진정시키고 국민을 단합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젤렌스키로선 페도로프를 국방장관으로 복귀시키는 것 또한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국방부 장관과 군 최고사령관의 경질 사태가 러시아와 푸틴에 대한 최고의 선물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의 해법은 무엇일까. 어느덧 재임 7년을 넘기면서 젤렌스키의 정치적 입지도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