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대출을 무작정 내주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합산 기준 연간 관리 목표를 웃돌면서 남은 대출 여력이 빠르게 줄었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은 대출 한도와 접수 채널을 제한하고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증가 속도를 낮추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관리는 집값과 가계부채를 동시에 누르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다. 시중에 공급되는 대출을 줄이면 주택 매수 수요도 위축된다. 높은 가계부채가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 시 차주의 상환 부담을 키우고 금융시스템의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문제는 총량이라는 숫자가 개별 대출의 성격까지 가려주지는 못하는 데 있다. 추가 주택 매입을 위한 신규 차입과 이미 체결된 계약을 마무리하기 위한 잔금대출이 은행의 가계대출 관리 목표 안에서 함께 관리된다. 은행의 총량 관리가 강화될수록 필요한 자금을 먼저 신청했는지, 어느 은행을 찾았는지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의 잔금대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잔금대출에 별도 여력을 인정하거나 일반 가계대출과 구분해 관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규제 방향을 바꾸기보다 이미 체결된 계약의 잔금 조달과 입주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는 보완에 가깝다.
하지만 보완 대상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보완책이 신축 아파트 계약자에게만 적용될 경우 새로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당국은 지난해 6·27 대출 규제 강화 이후 기존 주택을 매입한 차주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지원 대상을 선별하기보다 가계대출 총량 자체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총량 한도를 그대로 둔 채 특정 대출에 별도 여력을 배정하면 다른 대출의 취급 여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외를 추가하면 규제 체계는 복잡해지고 차주 간 형평성 논란도 반복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출 총량을 큰 폭으로 늘리는 것 역시 부담이 따른다. 은행권의 대출 공급이 다시 확대되면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주택 매수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 시장이 이를 규제 완화 신호로 받아들일 경우 집값 안정 효과도 약해질 수 있다.
당국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총량을 유지하면 정상적인 거래와 입주에 필요한 자금까지 막힐 수 있고, 총량을 풀면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다시 키울 수 있다. 일부 차주만 보호하면 형평성 논란도 뒤따른다.
금융은 집값을 누르는 수단인 동시에 주택 거래를 마무리하는 기반이다. 대출을 조이면 매수 수요는 줄지만, 이미 계약을 맺은 실수요자의 잔금과 입주까지 막힐 수 있다. 개별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받더라도 은행의 대출 여력이 부족하면 실제 대출은 실행되지 않을 수 있다. 금융만으로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집값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는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투자나 추가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은 엄격히 관리하되, 이미 계약을 맺은 실수요자가 잔금을 치르고 입주하는 데 필요한 자금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총량규제의 빈틈을 예외로 메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규제의 기준 자체를 더 정교하게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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