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지난 8일(현지시각)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조건으로 미국에 6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사진은 빨간 빛의 석유 파이프라인 뒤로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 지도. /사진=로이터
이란이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조건으로 미국에 미군 철수와 공격 영구 중단, 해상봉쇄 해제 등을 요구했다. 여기에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과 대이란 제재 철회, 동결자산 해제까지 요구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협상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은 지난 8일(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미국이 이란과 이란의 역내 동맹 무장세력을 상대로 벌인 전쟁을 영구적으로 끝내고 다시는 이란을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졸가드르 사무총장이 제시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조건은 크게 6가지다. ▲미국의 이란에 대한 위협 중단▲이란 및 역내 동맹 무장세력에 대한 공격의 영구 중단▲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 해제▲중동 지역에서 미군 철수▲전쟁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완전한 배상▲대이란 제재 철회 및 동결된 이란 자산의 조건 없는 해제 등이다.


졸가드르 사무총장은 이 같은 요구가 "이란 국민의 요구"라며 미국이 행동을 바로잡을 때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여부, 복합적 협상으로 확대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한 수로로,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세계 시장으로 이동하는 핵심 통로다. 이 때문에 해협의 통항이 제한될 경우 국제 유가와 에너지 공급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관리 및 통항 재개 방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란이 재개방 조건으로 기존 협상에서 논의된 사안보다 광범위한 요구를 새롭게 제시하면서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은 우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합의를 마련한 뒤 해상봉쇄를 종료한다는 입장이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할 계획이 없다'고 미국에 전달했다"면서 "미국은 이란으로부터 상업용 선박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란에 대한 해상봉쇄 과정에서 상업용 선박 53척의 항로를 변경시켰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실제 상선 운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와 관련해 오만과도 별도의 합의를 조율하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에 관한 합의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협 재개방 여부는 다른 조건이 충족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상황이 미국이 잠정 합의를 위반하면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란과 오만 사이 합의가 최종적으로 성사될 경우 선박은 이란에 가까운 항로로 해협에 진입한 뒤 오만에 가까운 항로로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을 전망이다.

협상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잠정 합의 기간에는 선박들이 통행료나 사용료를 내지 않고 해협을 통과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란이 해협 재개방을 위해 미군 철수와 공격 영구 중단뿐 아니라 제재 철회와 전쟁 피해 배상, 동결자산 해제까지 요구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여부는 미·이란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제재 문제, 전쟁 피해 배상 및 중동 지역 내 미군 주둔 문제까지 얽힌 복합적인 협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