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에서 말하는 공간이란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공백이거나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일 수 있다. 또 서양화에서의 배경이거나 입체감에 의한 착시일 수도 있다. 서양화의 배경은 그려진 대상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양화에서의 여백은 작품 주제에 대한 의미를 강화시킨다.

김형만, 심상, acrylic on canvas, 73x118cm, 2009.

김형만의 <심상>은 동양화의 여백 기법을 서양회화에 끌어들인 작품이다. 보통의 호박과 넝쿨을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호박은 나무가 아닌데 곧바로 자라고 있다. 어딘가에 넝쿨손을 감아야 할 줄기가 허공에서 자라고 무거운 호박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그림의 중심에서 상층부로 솟구치는 대담한 화면 구성에는 허공이 자리한다. 어딘가의 무엇인가를 움켜쥐어야만 하는 몇가닥의 넝쿨손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허허로움으로 자리한다.

화가는 넝쿨과 꽃, 호박 이외의 사물들은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다. 존재하는 사물을 고의적으로 그리지 않는 것은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본인의 감성이 확장될수록 화면을 비워둠으로써 더 많은 상상과 사물의 의미를 가중시키는 방법을 활용한다. 꽃과 잎은 무한한 생명과 삶의 가치를 대변하는 표상이다. 건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호박잎과 호박꽃은 싱싱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화가는 이러한 주된 이미지 이외의 모든 표현 대상을 생략함으로써 작품의 함축적 의미를 확장시킨다.

서양화지만 동양화의 여백처럼 정신의 비워둠이 표현된 작품이다. 작품에서의 여백은 사회활동의 근거와 삶의 애착과 생명력을 위한 사유의 공간으로 채워진다. 자연풍경의 일부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일부분 속에 자연 전체를 담고 있다.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호박넝쿨 뒤로는 담벼락이 있고, 강 둔치가 있다. 거름을 주는 농부의 손길이나 할머니의 요강이 포함돼 있다. 여백은 바람소리와 새소리, 자연 만물의 온갖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