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끝에서 부서지면서 입 안으로 퍼지는 달콤한 향기. 내 체온으로 부드러워진 이것은 쌉쌀한 맛을 남긴 채 몸안으로 들어간다. 허기진 몸은 금세 이것을 받아들여 아지랑이 같은 힘을 끌어올린다.
 
첫눈엔 달콤했지만 가까워지면 씁쓸하다가 이내 내 존재 속으로 녹아드는, 사랑을 닮은 이것. 중세시대 수도사들이 '영혼의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신의 음료'라 주장하면서 금식기도 기간에도 먹었다는 음료를 굳힌 이것. 그 이름은 영어로 초콜릿(chocolate), 불어의 쇼콜라(chocolat)다.
 
올해도 가톨릭 성자 발렌티누스의 순교일, 밸런타인데이(Saint Valentine's Day)에 초콜릿이 많이 팔렸다. 돈 벌려는 수작으로 일본 초콜릿회사가 퍼트린 풍습이라는 소문이 무성한데도 전 세계 여자들이 밸런타인데이가 올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내미는 건, 그 맛이 여자들이 꿈꾸는 사랑과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 씨는 자신의 칼럼에서 "(발렌티누스가) 군인의 결혼을 금지한 황제 몰래 사랑을 맺어준 것이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이라는 설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사랑과 연결되는 최초의 기록은 영국시인 초서가 1382년 발표한 백조의 모임(Parle-ment of Fowls)이라는 시"라며 ‘밸런타인데이에 새들이 서로 짝을 짓는다’는 구절을 전했다.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심리적 진실은 곧잘 사실적 진실과 어긋나곤 한다.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이로운몰은 '사회지도층의 선택, 이로운 초콜릿'이란 카피로 기획전을 했다.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 행복한나눔, 페어트레이드코리아의 공정무역 초콜릿을 모아 전시했다.
 
'사회지도층의 선택'은 TV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김주원이 했던 말이다. 현빈의 달콤쌉쌀한 사랑 연기에 힘입은 걸까. 그의 말에 기댄 마케팅은 꽤 성공적이었다. 트위터에서 '이 어메이징한 초콜릿아', '꼭 사야겠다면, 착한 초콜릿이 최선입니다' 같은 메시지는 수십번 리트윗(재전송)되면서 퍼져나갔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메시지로 답했다. "개념 남친들도 '와우'하고 탄성 지를 듯.(hello_mi****)" "저도 사회지도층의 초콜릿으로다가.(yeonj*****)" "밸런타인데이는 알 바 없지만 이런 초콜릿은 쟁여두고 싶네요.(netrain he*******)"
 
초콜릿은 원래 사회지도층의 기호물이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카카오나무를 처음 재배한 사람들은 서기 600년 즈음부터 1000년까지 번영을 누렸던 마야인들"이라며 "카카오 콩은 마야 사회에서 가장 귀한 상품이자 교환화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카카오 콩 100개는 노예 1명과 교환됐다.
 
아스텍 지도층은 '쓴 물'이라는 뜻의 '소코아틀'을 만들어 마셨다. 카카오 콩을 볶아 맷돌로 갈아 물에 갠 후 옥수수가루,용설란꿀과 함께 피망바닐라 등 향신료를 넣은 음료다. 이것을 아스텍의 마지막 황제 목테수마는 금으로 만든 잔으로 하루 50잔씩 마셨다. 노예 몇명의 땀이 여기에 들어갔을까.
 
프랑스 궁정에서 인기를 끌던 초콜릿은 귀족과 부르조아의 동경 속에 차츰 일반시장으로도 퍼졌다. 아프리카, 남미 식민지에선 카카오 나무가 퍼졌다. 지금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주원료가 거기서 나온다.
 
유럽 공정무역협회는 초콜릿 가격의 5%, 캐나다 ‘세이브 더 칠드런’은 2%가 카카오 생산자한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카 현지를 방문한 한 활동가 말에 따르면 카카오생산자가 받는 돈은 한가정이 주식을 사먹기에도 어려운 금액이라 한다.
 
공정무역 초콜릿은 적어도 '미성년 노동력 착취 없이' 법정 최저임금이나 지역 평균임금에 근접한 돈을 지불하고 생산된 카카오를 사다가 만들어진다. '짝짓기'를 앞둔 청년들이야말로 미래의 사회지도층일 터. 초콜릿 하나 사도 애들 고사리 손에 상처 내는 카카오의 진실쯤은 알고 고르는 게, 사회지도층의 선택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