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牛步)경영.’ 천천히 가더라도 내실을 다지면서 한발짝씩 움직이는 삼양그룹의 경영스타일이 그렇다. 그것은 87년 기업 역사를 이끌어 온 가장 큰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성장이 정체됐다는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삼양그룹이 지난 4일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김원 삼양사 대표이사 사장과 김량 전 삼양제넥스 사장의 부회장 승진과 함께 신설된 ‘최고경영회의’. 기존의 김윤 회장을 포함해 최고 수장 3명을 주축으로 한 ‘컨트롤타워’가 뜬 것이다.
우보경영의 이미지를 깨고 공격경영의 속도를 한층 더 높여가고 있는 삼양. 김윤-김원-김량, 세 사촌형제의 ‘밀착경영’ 집중도를 더욱 높여 줄 컨트롤타워의 역할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윤-김원-김량, 본격 '3인 사촌 경영' 시동
삼양그룹은 2세 경영인 ‘고 김상홍 명예회장 - 김상하 그룹회장’ 체제를 뒤이어 3세 경영 역시 지금껏 ‘김윤 회장-김원 삼양사 사장’ 체제로 맥을 이어왔다. 고 김상홍 명예회장과 김상하 그룹회장은 각각 김연수 초대회장의 3남과 5남으로, 지난 2000년 중반까지 탄탄한 형제경영을 통해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평이다.
이번 조직개편은 2인 대표 체제에서 3인 대표 체제로 큰 변화를 꾀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김원 부회장은 김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이고, 김량 부회장은 고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김윤 회장의 친동생이다.
특히 이들 3인 대표가 참여하는 최고경영회의는 앞으로 사촌형제간의 궁합이 얼마나 중요할지를 말해주는 부분. 이들은 기존에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식품-화학'의 두축으로 이뤄진 삼양의 중요한 사업전략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3인 구도를 확실하게 시스템화 함으로써 밀착경영을 강화하고 공격경영의 속도를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고경영회의는 그룹의 중장기 사업방향 및 투자, 임원인사, 경영혁신 등을 논의하는 의사결정기관이다. 삼양의 미래 산업을 이끌어 갈 핵심동력인 셈이다. 최고경영회의에서 논의·결정한 사항은 이를 보좌하는 전략실을 통해 각 부문의 그룹장에게 전달된다. ‘식품-화학-의약·바이오-운영’으로 나뉜 비즈니스그룹의 그룹장은 그룹별 전략수립 및 실행, 조직 및 인력운영, 일정 규모의 투자 등에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이 있다.
삼양그룹 관계자는 “최고경영회의에서 큰 밑그림을 그리면 각 부문의 그룹장이 책임경영을 통해 전략을 실행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3인 대표체제의 최고경영회의 → 전략실 → 그룹장으로 이어지는 경영시스템이 구축된 만큼 의사결정이나 사업을 진행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 보다 효율적인 책임경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꿈틀거리는 삼양, 컨트롤타워 왜 필요했을까?
‘2015년까지 해마다 10% 성장, 매출 7조원 목표’
지난해 삼양그룹의 86주년 창립기념식에서 김윤 회장이 발표한 ‘2015 비전’이다. 그런데 그 발표 장소가 다름아닌 오대산이다. 김윤 회장은 이곳에서 비전달성의 각오를 다졌다.
사실 삼양이 ‘우보경영’ 대신 ‘공격경영’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윤 회장 취임 당시 “삼양그룹은 보수적인 경영전략으로 성장이 정체돼 있다”며 “앞으로는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2010 비전’도 제시한 바 있다.
이후 김 회장은 삼양사의 주축이던 섬유사업부문을 정리하는 등 과감한 추진력으로 경영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목표했던 매출 6조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김 회장으로서는 ‘2015 비전 달성’이 간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올해는 2015 비전을 추진하는 첫해다. 김 회장이 이번 조직개편에서 컨트롤타워 등 의사결정 체계를 강화한 것은 공격경영의 가속도를 높이기 위한 실전 배치인 것이다.
식품업체인 삼양사를 모기업으로 하는 삼양그룹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로 인해 식품부문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우리는 식품과 화학, 신사업부문의 비중이 3:3:4 정도인데, 회사의 30%를 차지하는 식품 부문이 흔들리고 있다”며 “다행히 화학부문의 해외수출이 활성화되면서 식품부문의 적자를 보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플랜트사업인 식품원료부문은 이미 설비 투자를 통해 인건비를 줄일 만큼 줄이고, 생산성은 최대한 높여 놓은 상태다. 때문에 조직개편을 하더라도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
박종록 한화증권 연구원은 “식품원료 등 소재산업은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 변화에 따라 휘둘리는 경향이 크다”며 “더욱이 내수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양그룹 관계자는 “식품쪽 적자는 시장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진 않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부문과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예전보다는 보완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약바이오 등 신사업부문을 강화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김윤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의약, 바이오사업에 투자하며 사업다각화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15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신사업부문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세계바이오시장 규모는 약 10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최근에도 삼성 등 대기업이 바이오산업에 뛰어드는 등 국내에서는 아직 시장 초기 단계지만,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시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삼양그룹은 최근 판교 R&D센터 건립에 1200억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의약바이오부문에 공격적인 경영을 전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박종록 연구원은 “신사업 부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며 “최근 대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신사업부문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