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히트곡 '만만하니'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다. 최근 몇년간의 상황을 보면 신용카드사의 심정을 딱 이 가사가 대신해 주는 것 같다. 틈만 나면 이곳저곳에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의 인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전국 석유류 도ㆍ소매업을 담당하는 석유대리점 550여개사와 정유 4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석유유통협회는 정부에 주유소 신용카드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를 통한 유류가격 인하 방안을 건의했다.

석유유통협회는 “주유소 카드 결제비율은 지난해 기준 90%에 달하고, 결제액의 1.5%가 카드 수수료로 부과되고 있어 유류가격 상승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며 “주유소의 카드수수료율을 현행 1.5%에서 1% 수준으로 낮춰 기름값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수수료율을 0.5%포인트 인하하면 소비자부담이 연간 2100억원 정도 경감된다”고 추산했다.

신용카드사는 유류가격 상승 시 동반 상승하는 카드 수수료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주유소는 고유가로 인한 소비 감소와 카드수수료 부담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 석유유통협회가 가맹점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카드업계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기름값에 대한 공익적 측면과 유류세 특성 등을 감안하고 교통, 의료 등 서민업종에 대한 정부의 우대요구에 따라 1983년부터 국내 최저수수료율인 1.5%를 적용하고 있다"며 "그 후 단 한차례도 인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0년과 비교할 때 휘발유와 경유가격은 각각 48.16%, 169.53% 올랐으나 가맹점수수료 증가율은 0%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건당 결제금액에 있어서 주유소는 7만3000원, 백화점은 11만4000원으로 주유소가 백화점보다 수익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가맹점수수료율은 오히려 주유소가 백화점(2.0~2.15%)보다 낮은 것은 기름값에 대한 공익적 측면과 유류세 특성을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수료율 인하 요구 왜 생기나

가맹점수수료율 인하요구는 이번 석유유통협회가 처음이 아니다. 경기가 어려워 긴축이 요구될 때마다 신용카드 수수료는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 2004년 가맹점단체협회와 수수료 인하 논쟁, 이마트와 비씨카드 등과의 수수료 인상 분쟁, 2006년 서울시 후불교통카드 가맹점 수수료 분쟁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결과는 대부분 카드사의 패배로 끝났다.

이처럼 수시로 카드사 수수료 분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카드업계는 ‘원죄론’을 든다. 지난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카드사가 경제를 망친 주범처럼 되면서 카드사가 양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정착됐다는 것. 물론 이전에도 수수료 분쟁은 있었지만 카드대란 이후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수료 인하 요구가 발행할 정도로 심해졌다는 논리다.

시장경제에 맡기기 보다는 정치적 개입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보우 단국대 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는 “근본적 배경은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데, 그 배경에는 가맹점수수료는 시장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4년 가맹점단체협회와의 수수료 인하 논쟁 때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먼저 이를 지적하고 나섰고, 지난해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가맹점수수료에 대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카드사에게 인하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카드사들의 수익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업카드사의 당기순이익은 2조7243억원으로 전년보다 46.1%(8600억원)나 급증했다. 카드사 수익이 커지고 있는 만큼 고통분담 차원에서 수수료를 내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카드업계는 지난 2000년 이후 꾸준히 가맹점수수료율을 인하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카드업계 평균 가맹점수수료율은 2.92%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수수료율은 2.10%로 10년 전에 비해 0.82%포인트 인하됐다. 단순히 수수료 때문에 수익이 증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수료율 인하, 수혜자와 피해자 따져보기

일반 카드 이용자에게는 가맹점수수료율 논란이 이해당사자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수수료 인하의 효과가 카드 이용자에게 와닿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가맹점수수료율의 인하 영향이 카드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분쟁이 심화돼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큼 결제수단의 축소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 이마트와 분쟁 때 상당기간 이마트에서 비씨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카드사와 보험사의 수수료 협상이 결렬되면서 일부 대형보험사들이 가맹점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보험료를 현금으로 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수수료 인하 여파가 카드의 부가서비스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카드 약관에 6개월간 임의로 서비스를 축소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카드 갱신 때에는 부가서비스를 축소해 나갈 공산이 크다. 카드사가 부가서비스 외에 기타 수수료(이자 등)를 인상하는 방법도 동원할 수 있다.

이보우 교수는 “단기 업적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진은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못 견딘다”며 “수수료율이 인하되면 소비자의 눈에 보이지 않게 카드 서비스를 줄이고 여타 이자율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등 대출업무에 있어서 현 이자율 범위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고객 신용분류를 바꾸면 실질적인 이자율 인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수수료율 분쟁이 생길 경우 소비자들은 수수료 인하의 혜택이 실제로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국 카드사와 가맹점간의 분쟁으로 소비자만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