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색채가 뚜렷한 롯데그룹도 40년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롯데그룹은 부장-차장-과장-대리로 이어지는 연공서열형 직급을 포기하고 4월부터 팀장과 매니저 중심의 그레이드 인사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팀장제의 특징은 빠른 의사결정과 성과 책임제다. 경쟁업체의 프로젝트가 상무와 부장, 실무자 사이를 오가는 사이 팀장제 기업들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성과를 거뒀다. 연공서열제에서라면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도 매너리즘에 빠진 부장의 시원찮은 반응에 묻히기 일쑤지만, 팀장제라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팀장만 설득하면 실행 가능하고, 결과까지 좋다면 팀장 팀원 모두의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팀장제는 이제 대세가 됐다. 70% 이상의 기업이 팀장제를 운영하고 100만명 이상의 팀장이 기업의 중추로 활약하고 있다. 팀장의 역할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도 성황이다. 팀장 리더십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휴넷에 따르면 팀장 교육 프로그램이 2009년부터 해마다 100%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팀장 교육 강화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셈이다.
마침 팀장 리더십 교육을 이수한 팀장들의 좌담회가 마련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그들의 이야기들 듣기 위해 을지로의 한 카페를 찾았다.
▶한문경 팀장(이하 한) : 1999년 시작한 디자인 소품 유통 쇼핑몰 회사다. 직원수 200명의 중견기업이다. 회원수 110만명의 디자인소품 전문몰 분야 1위 기업이다. 현재 아이띵소 사업팀장으로 4년째다.
▶김기중 부장(이하 김): 독일계 자동차 부품회사다. 2007년 연락사무실로 오픈했으며 자동차 금형 등을 전 세계 공장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르노삼성 SM5의 스트럭쳐 파트에 금형으로 된 제품을 모두 납품하고 있다. 글로벌에서는 마쯔다, 쓰즈키, 폭스바겐, 아우디 등에 납품하는 140년 된 그룹이다.
▶최두옥 팀장(이하 최): 모임 전문공간 토즈로 잘 알려져 있다. 서비스와 설비 포함해서 비즈니스 및 스터디 공간 제공 기업이다. 올해로 10년 되는 회사로 최근 강남에서 비즈니스센터를 오픈했다. 현재 공간기획팀장으로 있으며 정직원 80명과 아르바이트 120명이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백광호 팀장(이하 백): 덴마크 머스크그룹의 해난구조 전문기업인 스비츠사의 한국법인이다. 직원수는 7명이지만 사업 특성상 개인이 수백억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다.
▶안정민 과장(이하 안): 주로 위험물 관련 물류회사다. 위험물에 대한 수출과 수입을 서비스하는 회사다. 사업 규모는 작지만 새로운 수요 창출이 기대되는 분야다. 국토해양부 산하기관인 한국해사위험물검사원으로 10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 팀장의 애환이 있을텐데?
▶한: 육아휴직 후 팀장으로 복귀했는데 그동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 분야에 예능 전공자가 많은데 이들의 특징이 고집이 세고 오피스 기초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애를 먹었다.
▶최: 팀장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이 어려웠다. 기존의 일을 더 잘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임무를 수행해야 하나 고민했다. 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팀원 관리를 하면서 어떤 것이 자율이고, 어떤 것이 무관심인지 혼란스러웠다. 팀원에게 자신감 있게 업무를 지시하거나 리드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백: 윗사람과 스킨십이 잦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부하직원과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 큰 규모의 계약을 하다보니 윗사람과 상의하는 일이 많아졌다. 팀장 한명의 실수로 100억원짜리 계약이 넘어갈 수 있다. 책임 추궁은 없지만 부담이 느껴진다.
▶안: 팀장은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조직원들이 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하루하루 일에 치이다보니 거기까지 감당하기 어렵다. 고객기절(고객이 놀라 까무라칠 정도의 고객만족)을 모토로 새로운 물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김: 국내 기업은 팀 리더와 매니저에 혼돈이 있다. 리더는 효과를 따지지만 매니저는 효율을 책임진다. 국내에서는 팀장에게 매니저의 역할을 더 강조하지 않나 싶다. 팀장이 되기 전에는 ‘무엇을 하면 되느냐’고 물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장이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공학도다보니 경영 지식이 부족했다. 지금은 온라인 MBA과정 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 팀장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
▶백: 관계사 임원과 이야기하다가 기술직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듣고 법대로 편입해 2년 만에 과정을 마쳤다. 그 후로 ‘독한 놈이다’란 말을 듣게 됐다. 자극이 약이 됐다.
▶한: 동양화를 전공한 나로선 매일같이 손익표를 써야 하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또 내가 적절하게 후배들을 평가하는지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팀장 교육을 통해 해답을 찾았다. 한번은 유능하지만 임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내가 임원을 설득해 인정받게 한 경우가 있다. 과거였으면 임원의 의견을 받아들였겠지만 탄탄한 근거를 들어 후배의 능력을 증명했다. 팀장의 자리가 크게 느껴진 경우다.
- 팀장제는 곧 성과제다. 문제점은 없나?
▶백: 팀장과의 관계가 미미하다보니 갈등 해소가 쉽지 않다. 인맥싸움과 자리싸움도 적지않다. 예컨대 A팀이 양보하면 우리가 더 많은 실적을 해올 수 있지만 A팀장은 "내 알 바 아니잖아요"라고 답한다. 팀 간 경쟁으로 성과를 못 내는 경우가 간혹 있다.
▶김: 수치 정해주고 성과를 내라고 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심지어 연초에 이미 성과를 포기하는 직원도 발생한다. 물론 우리 회사는 다르다. 목표치를 제시하고 사장과 목표치에 대한 타협점을 찾는다. 일종의 사장과의 줄다리기다. 합의하면 양측이 서명을 한다. 상호 간에 동의했느냐 아니면 일방적이냐가 성과주의를 푸는 열쇠다.
▶안: 공무원 사회경험을 비춰보면 성과와 관련한 이야기가 제법 있다. 신기하게도 실적이나 예산집행에 있어 연말에 가면 소숫점 이하 자리까지 정확히 맞춘다.(좌중 폭소) 고과를 여러 번 결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매번 정확하다. 성과제의 폐해다.
- 그렇다면 적절한 평가는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최: 개인마다 어떤 부분은 잘하고 어떤 부분은 부족한 점이 있다. 우리 회사 임원들은 구성원에게 평균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 좋은 기업은 구성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과 더불어 잘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팀장으로서 의욕이 생겼던 일은?
▶김: 출장 중 구매부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짜고짜 가족들과 여행을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일에 몰입하느라 가족들에게 소홀한 것을 임원들이 헤아려준 듯했다. 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웃음)
▶최: 회사에서 팀장의 역할에 대해 신뢰를 준 일이 있다. 올 초 회사에서 한달 출장을 줬는데 목적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 했다. 출장 대상국가를 비롯해 일정, 아이템까지 자율에 맡겼다. 출장기간 동안 확인전화 한번 없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신뢰감을 줬을 때 팀장은 힘을 낸다.
- 성공적인 팀장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김: 다들 최종 목표가 팀장은 아니지 않느냐. 나는 공장장(플랜트매니저)을 한번 해보고 싶다. 경영-생산관리-회계 등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만약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하루 10시간이라면 8시간은 업무에 충실하고 2시간은 앞으로 가야할 일을 준비하겠다. 미리 한단계 앞서서 준비한다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 내가 알고있는 한 팀장은 팀원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어떻게든 이야기에 동참하려고 직원들의 이야기에 안쓰러울 만큼 끼어들었다. 그러다보니 팀원들이 기대하던 카리스마가 오히려 사라졌다. 회사에서 목적하는 바는 같지만 개인의 취향은 다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소통이 시작된다.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한: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는 친구를 보면 그만큼 인간관계가 부족하다. 우리 분야에서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능력만큼이나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것이 개인에게 재산이 된다.
▶안: 꼭 지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열정은 갖춰야 한다. 모든 직원이 회사 지분을 가질 순 없지만 모두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조직이 성공한다.
<맺으며>좌담회가 시작된 지 3시간이 지났건만 이들은 좀처럼 일어설 기미조차 없다. 백 과장이 ‘여직원과의 갈등으로 곤혹스럽다’며 솔루션을 부탁하자 저마다 경험을 토대로 해결책을 내놓는다. 늦은 밤까지 계속된 그들의 대화에서 100만 팀장의 고민이 절절히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