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의 노인 매춘, 대형마트의 유통기한 변조, 세제로 씻는 곱창…. 지금껏 그가 터뜨린 굵직굵직한 특종만 해도 여러건이다. 때로는 현장을 잡기 위해 어둡고 은밀한 곳까지 잠입취재를 시도하고, 때로는 위장취업으로 내부의 깊숙한 비리(?)를 캐기도 한다. 가방 속에 숨겨둔 6mm 몰카만 있으면, 그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그래서일까. 기자는 그를 만나기 전 흡사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탐정’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본 그의 모습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우렁찬 목소리로 재밌게 수다를 떨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기 좋아하는 ‘오지랖 넓은 이웃집 아줌마’. MBC <PD수첩>, MBC <불만제로>, KBS <소비자고발> 등 시사고발프로그램에서 열혈 활약 중인 VJ 사광주(48) 씨다.
 
◆아줌마, VJ가 되기까지
 
VJ,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한 직업 중 하나다. 비디오 저널리스트를 일컫는 VJ는 단순히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이템을 기획하고 영상으로 취재하며 편집을 거쳐 보도물을 완성하는 데까지 책임진다. 말하자면 ‘1인 언론’이나 마찬가지다.
 
올해로 15년째, 방송가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베테랑 VJ 사씨는 “처음 일 시작할 때만 해도 VJ란 명칭도 없었다”며 말문을 연다. 그러니 더욱 궁금해진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집안 살림이 빠듯했어요. 돈 되는 부업은 다 했는데, 지방신문이나 라디오 같은데 글을 보내면 상품을 주잖아요. 상품 타는 재미에 사연도 듣고 퀴즈프로에도 나갔어요. 제가 처음 퀴즈프로에서 왕중왕 하고 받은 상품이 500만원짜리 냉장고예요. 생각해보세요. 그게 20년 전이니까 남편 월급보다 더 큰 금액이잖아요.”
 
본격적인 퀴즈 프로그램 사냥에 나선 사씨는 그야말로 ‘고시공부 하듯’ 퀴즈 공부에 매달렸다. 설거지 하면서도 시사상식 용어를 싱크대 앞에 붙여놓고 달달 외웠으며, 아이들 업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신문을 봤다. 당시 그의 사연은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종종 소개되며, 토크쇼 초대 손님으로 등장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기회가 1996년 MBC <10시 임성훈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모집한 주부특공대를 맡아 본격적인 VJ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뽑힌 주부들 이력만 봐도 대단했는데 고졸은 나밖에 없더라”며 “아마 퀴즈 프로그램 준비하면서 공부한 상식들이 면접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고 박장대소했다. 그곳에서 그는 촬영 기술이나 취재와 관련한 기본적인 것들을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 2~3일가량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위험한 여성 노숙자’ 등 특종을 터뜨리기도 했다.
 
“처음엔 무시도 많이 당했어요. 소위 ‘학력도 배경도’ 내세울 게 없으니까, 주부들 사이에서도 혼자 겉돌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취재를 다니는 게 마냥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묵묵히 뛰다보니까 다들 조금씩 저를 알아봐 주셨던 것 같아요.”


류승희 기자
 
◆몰카+아줌마 수다=특종?
 
그는 철저한 현장형 저널리스트다. ‘묻지마 관광’이 아이템으로 잡히면 자신이 직접 묻지마 관광 아줌마가 되어 따라가고, 대형마트 식품 관리문제에 대해 취재를 하려면 일단 대형마트에 취직부터 한다. 그렇게 그 현장의 사람들과 부대끼고, 얘기를 나누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세상 밖으로 까발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위험한 순간에 부딪치는 일도 예사. 한번은 점집 사기와 관련한 취재를 나갔는데 배에 부적을 붙여야 한다며 점쟁이가 윗옷을 살짝 들어올려 당황한 적도 있었다. 몰카 장비가 옷 안으로 배쪽에 걸쳐져 있는데 그게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 그는 “아줌마라 배가 나와 뱃살 빼는 기계라고 둘러대서 겨우 넘겼다”고 깔깔거린다.
 
사이비 종교단체를 취재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형마트의 유통기한 변조 사실을 잡아낸 후에는 마트 직원들이 고향집 식구들에게 찾아가 협박과 애원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매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데도 그는 자신의 일이 그저 재미있단다. 노숙자부터 노래방 도우미, 의사 등 그가 취재를 다니며 겪어 본 직업만 해도 벌써 수백 종류. 그러니 그는 “세상에 이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직업이 또 어딨겠냐”고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아줌마라서 그런가 봐요. 취재를 나가는 곳 대부분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잖아요. 한번은 부화중지란이라고, 이게 식용이 금지된 달걀이에요. 그런데 이걸 싼값에 사다가 무료 급식을 받는 아이들한테 주고 있더라고요. 제가 세 아이의 엄마니까 그런 현장을 보면 더 열심히 취재에 뛰어들게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가 살림을 꾸리고 가족들을 보살피는 ‘주부’이기에 더욱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이템을 잡아내는 건 당연. 그는 취재 중에도 아줌마라는 게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가 까르르 웃으며 부연한다.
 
“일단 의심을 안 하잖아요. 취재 전에 조사를 하고 가는 건 기본이지만, 그래도 현장에 가면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해요. 아주 기초적인 것까지 물어보거든요. 무식한 아줌마가 이것저것 물어보니 얘기가 술술술 나와요. 방송국 PD들이 저한테 만날 하는 말이 ‘왜 자기가 가면 다들 입을 다무는데 누나한테만 그렇게 얘기를 해주냐고’ 그러기도 해요. 하하하. 남들 눈엔 ‘푼수 아줌마’로 보이겠지만 말하자면 그게 제 비장의 무기거든요.”
 
이렇게 보도가 나가고 실제로 변화가 느껴질 때면 뿌듯함도 더 크다. 특히 아줌마 특성을 십분 발휘, 대형마트 등을 주로 취재하는 그는 “아주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내가 고생한 덕에 또 다른 주부들이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사실 식당이나 마트 같은 데서 취재한 고발 내용 중 상당수는, 나쁜 마음에서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몰라서 벌어진 경우도 꽤 있어요. 세제로 씻는 곱창 같은 거요. 그 할머니들은 40년간 늘 그래왔으니 ‘나쁘다’라는 생각을 못하신 거죠. 그래도 방송이 나가고 식당에서 조심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가 하나는 더 늘었구나 싶은거죠. 그게 아줌마 VJ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