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에 소금꽃을 피워내는 염전, 끝이 보이지 않는 널따란 갯벌과 은빛 해변, 짙은 녹음의 해송숲…. 신안 앞바다에 떠있는 증도는 시간도 멈출 것 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슬로시티다. 뒤돌아 볼 틈도 없는 도시의 분주한 일상을 잠시나마 접어두고 그 섬으로 떠나보자.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Slow City)는 민간에서 주도하는 범지구적 운동이다. 슬로시티를 우리 말로는 '느린 도시' '느림의 도시' '느리게 사는 도시' 등으로 해석한다. 슬로시티는 인간이 자연과의 공존을 꾀하는 생태적인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남 신안군의 증도, 완도군의 청산도, 장흥군의 유치, 전북 담양군의 창평, 경남 하동군의 악양, 충남 예산군의 대흥 이렇게 모두 6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이 중에서 신안군의 증도는 2007년 장흥 담양 완도군과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이름을 올렸다.
증도 가는 길. 예전 같으면 배를 타야 증도로 들어설 수 있었지만, 지난해 신안군 지도읍과 증도를 잇는 증도대교가 건설되면서 이젠 차량을 이용해서도 직접 입도할 수 있게 됐다.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쳐 무안 광주고속로 북무안 나들목으로 나온 다음 24번 국도를 타면 무안군 해제면과 신안군 지도읍을 지나 증도로 들어서게 된다.
도로가에는 '슬로시티 입장료를 징수한다'는 플래카드가 연이어 눈에 띈다. 증도는 지난 5월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증도대교가 개통되면서 무려 80만명이 증도를 찾았는데, 이때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증도 전체가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증도 입장료(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를 내면 쓰레기봉투를 주는데, 여기에 자신들의 쓰레기를 담아오면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준다. 이 정책 시행 한달 만에 증도에 넘쳐나던 쓰레기는 보기 어려워졌고, 증도는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7월1일부터는 입장료(어른 10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가 싸진다. 대신 쓰레기는 배포하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자율적으로 지정된 장소에 버리도록 할 방침이다.
입장료를 내고 '슬로 게이트'를 지나면 제일 먼저 태평염전이 반긴다. 증도는 원래 전증도와 후증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6·25전쟁 직후인 1953년 피난민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소금 생산량도 높이기 위해 섬 사이의 갯벌에 제방을 쌓고 염전을 조성하면서 지금처럼 하나의 섬이 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태평염전의 면적은 462만㎡. 단일 염전으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 한다. 여기서 연간 1만6000톤의 천일염을 생산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천일염 전체 생산량의 6%에 해당하는 양이다. 태평염전은 그 자체가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제 제360호)으로 지정돼 있다.
태평염전 입구 왼쪽에는 소금박물관이 있다. 이 건물은 염전을 조성할 때 발파현장에서 나온 돌로 지은 소금창고. 1980년대 후반 목조 소금창고들이 생겨나면서 자재 창고로 쓰이다 2007년 소금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이곳에선 소금의 역사, 우리의 전통적 소금 생산방식 등 소금에 관한 것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이 소금박물관도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제 제361호)이다.
염전 안에는 염전체험장과 염생식물원도 있다. 염전체험장에선 3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하루 두차례(오전 11시, 오후 3시)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다. 총 2~3시간 소요. 방문 3일 전까지 홈페이지(www.saltmuseum.org)나 전화(061-275-0829)로 예약하면 된다. 체험료는 어른 7000원, 청소년·어린이 6000원.
◆방문객들에게 인기 많은 염생식물원
염생식물원은 방문객들에게 인기 높은 장소 중 하나. 염생식물(鹽生植物)은 소금기가 많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총칭한다. 식물원에 들어서면 220m의 목조 관찰 데크를 따라가며 태평염전 갯벌습지에 자생하고 있는 갖가지 염생식물 군락지를 관찰할 수 있다. 요즘에는 새하얗게 핀 띠꽃이 마지막 춤사위를 보여준다. 벼이삭을 닮은 띠꽃은 지역에 따라 삐비, 삐삐, 삘기 등으로 불리는 식물. 그 너머로는 일년 동안 잎이 녹색, 붉은색, 황녹색 등 여러가지 색이 난다는 칠면초가 눈길을 끈다. 식물뿐만이 아니다. 관찰 데크를 걷다 갯벌을 내려다보면 짱뚱어, 칠게, 방게, 갯비틀이고둥 등 여러 갯벌 생물들도 눈에 띈다.
소금박물관 근처에 소금동굴힐링센터와 솔트레스토랑도 있지만, 소금박물관 앞 언덕에 있는 태평염전 낙조전망대에 오르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전망대까지 5분 정도 발품을 팔면 광활한 태평염전의 아름다운 광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태평염전 외에도 증도에는 볼거리가 아주 많다. 태평염전 입구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동선이 경제적이다. 증도 남쪽에선 MBC 텔레비전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인 화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갯벌의 생태와 문화 등을 살필 수 있는 증도갯벌전시관을 차례로 만난다. 서쪽의 우전해변 한반도모양의 해송 숲속에는 '천년의 숲 삼림욕장'이 조성돼 있다. 10km에 이르는 숲속 산책로를 거닐면 슬로시티의 또 다른 매력에 빠지게 된다. 우전해변 옆의 갯벌에 나무로 건립한 짱뚱어다리를 거닐면 갯벌 관찰도 가능하다. 북서쪽 끄트머리 해안에서는 중국 송·원대 유물 매장 해역을 조망할 수 있다. 경치가 좋다.
●숙박 증도 남쪽의 우전리에 있는 엘도라도리조트(1544-8865, 061-260-3300, www.eldoradoresort.co.kr)는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한 휴양 시설이다. 2인1실 기준 15평형 16만3000~25만원. 17평형 18만~27만9000원. 2인 기준 조식 뷔페 무료 이용 포함.
●별미 5~6월에 증도를 포함한 신안 앞바다에서 잡히는 병어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회로 먹으면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증도 입구라 할 수 있는 신안군 지도읍 송도수협공판장은 주변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집하장. 병어도 이곳으로 들어온다. 위판장에서 병어를 사 회 떠주는 집에서 회를 뜬 뒤 항구 파라솔에서 먹으면 된다. 병어 1마리 1만원. 회 뜨는 데 2000원, 초장 2000원, 야채모듬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