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이름으로?'
지난 3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맏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얼핏 보면 경영자의 신분에서 벗어난 몸이지만 롯데그룹 내 장악력은 여전하다. CEO로서의 '궤적' 또한 더 넓어지고 있다는 게 요즘 그에 대한 평가다.

퇴임에 앞서 현대정보기술의 지분을 취득한 것이 'CEO 신영자'로서의 지속적인 행보를 염두에 둔 '액션'이었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현대정보기술 지분 매입, 경영참여 '수순'

신 이사장은 지난해 말 그룹의 시스템통합(SI)업체인 현대정보기술 지분을 매입했다. 그 시점은 그룹 경영일선에서 표면상 물러나기 근 두달 전. 

롯데정보통신은 지난 2월16일 뒤늦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등기임원인 신 이사장이 지난해 12월13일 현대정보기술 주식 4만주를 9882만5000원(주당 2470원)에 장내 매수, 0.08%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신 이사장은 현재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정보통신 지분을 3.5% 보유 중이다. 

그가 밝힌 지분취득 목적은 경영권 참여다. 현재 롯데정보통신(지분 52.30%)이 현대정보기술의 최대주주로 자리하고 있어 향후 신 이사장이 '경영 지휘봉'을 되잡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

특히 롯데가 현대정보기술을 인수하면서부터 그룹내 두 SI업체간 합병 추진 가능성이 거론돼 왔지만 그동안 롯데정보통신은 가시적인 합병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신 이사장이 이번에 현대정보기술의 지분을 매입함에 따라 향후 그가 롯데그룹의 SI사업부문을 가져가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평가가 많아졌다.

실제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와 합병 이후  주식시장에서의 가치 상승 기대감이 거론되면서 지난 2월16일 공시 당시 현대정보기술의 주가는 10.43% 급등한 2595원에 마치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그룹 측은 신 이사장의 지분매입과 관련 "단순히 개인 여윳돈으로 투자한 것이다. 롯데정보통신의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권 참여'라고 기재한 것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애욕의 40년' 왜 접어야 했나

지난 2월3일 롯데그룹의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현업 은퇴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배 다른 누나인 그가 한때는 신동빈 회장과 더불어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물망에 올랐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만 해도 신 이사장은 국내 면세점 업체로서는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약 900㎡(270평) 규모의 매장을 오픈하는 등 왕성한 대내외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정기인사를 통해 그는 롯데쇼핑 '사장직'을 내놓고 롯데복지재단·롯데장학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을 총괄하는 '이사장'의 직함을 얻었다. 40년 만에 경영지휘봉을 비로소 내려놓은 셈이다. 

당시 롯데그룹 측은 "신영자 사장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길 원하는 본인의 뜻을 존중해 현업에서 한발 물러나게 됐다"며 "향후 그룹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그의 퇴임이 '용퇴'가 아닌 '떠밀린 은퇴'였다는 해석이 즐비하다. 최근 불거진 '재벌가 빵 장사' 와 '재벌가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신 이사장 측이 적잖게 관여하고 있어 신격호 총괄회장이 물러나게 했다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신 이사장의 딸 장선윤 씨는 식품기업 '블리스'를 세우고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 '포숑'을 들여와 롯데백화점을 기반으로 사업을 전개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장 씨의 남편인 양성욱 씨도 고급 물티슈를 수입해 롯데마트 등 기존 롯데 유통망을 중심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하려다 역시 포화를 맞았다. 결국 장 대표는 베이커리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고, 양씨도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 이사장의 장남인 장재영 씨가 거론됐다. 장씨는 명품 수입업체 비엔에프통상의 오너인데 비엔에프통상은 패션 브랜드 폴스미스, 캠퍼와 화장품 브랜드 SKⅡ 등 해외 제품을 수입해 롯데면세점·롯데백화점 등을 통해 독점 판매하고 있어 역시 '재벌가 일감 몰아주기'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홀로서기' 언제쯤 가능할까 

신 이사장의 현대정보기술 주식 매입은 신 이사장의 자녀들이 소유한 회사가 롯데그룹에서 계열분리되는 상황과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다. 즉 계열분리를 통한 신영자의 '홀로서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해석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신 이사장의 자녀들이 경영하는 비엔에프통상과 유니엘, 비엔에프패션엔컬쳐인터내셔날, 비엔에프에스씨, 제이베스트, 그린퓨처 등 6개사는 롯데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비엔에프통상은 앞서 설명했듯 신 이사장의 장남 장재영 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이고 유니엘 역시 장씨가 지분 98%를 보유한 포장 및 인쇄기업이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신 이사장이 최대주주로 영화관 매점사업을 하는 시네마푸드가 설립됐고 그해 초에는 장녀 장선윤 씨가 와인과 제과를 통신판매하는 블리스를 설립해 신영자 측의 '독립선언' 행보에 동참했었다.

화려한 CEO의 모습에서 '외인'으로 돌아온 신영자 이사장. '분가'를 향한 그의 행보는 이제부터 더 볼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