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도착한 부산역 앞은 낯설었다. 정리되지 않은 도시의 길과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자갈치시장을 찾아 소주 한 잔에 밥 한 끼를 해결했다.
 
잠들지 않는 바다를 보기 위해 광안리로 향했다. 역시 광안리 해변은 야경이 아름답다. 광안대교의 불빛과 해안을 따라 들어선 건물의 불빛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거린다.
 
새벽이 되도록 젊은이들은 그 바다를 떠날 줄 몰랐다. 광안리 밤바다를 바라보며 술 한 잔, 이야기 하나를 주고받는 시간은 우리를 다시 이십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허공을 가르는 다리
 
새벽 깊은 시간 잠든 탓에 아침이 늦어졌다. 중천에 떠오른 해가 벌써부터 뜨겁다. 바다가 희뿌연 장막을 쳤다. 해운대 해수욕장 동쪽 끝에 있는 미포선착장에서 해운대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부산의 바다를 안개는 먼데서부터 감싸 안는다. 뿌리 없는 감상으로라도 그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유람선이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해변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보일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물 위의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식 이별의 항구가 아니라 이곳은 모두가 행복한 부산의 바다여행길이다. 
 
파도는 배를 좌우로 기우뚱 거리게 만들거나 배 전체를 술렁이게 만들기도 한다. 부서진 파도 알갱이들이 갑판까지 올라온다. 그 사이 배는 해운대 앞바다를 지난다. 저 멀리 백사장과 사람들이 보인다. 그 뒤 고층빌딩은 순간 내 머릿속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기암절벽으로 변한다. 
 
동백섬 소나무 숲이 바다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숲 한쪽에는 세계의 정상들이 한 데 모여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초등학교 졸업여행 사진처럼 다소곳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는 건물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들이닥치는 풍경은 수영만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다. 바다 밖에서 보는 광안대교는 한마디로 ‘물 위에 뜬 다리’다. 바다 위에 떠 있어 공중과 공중을 연결하는,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그래서 땅이 땅으로 가게하고 허공이 허공으로 이어지게 하는 장엄한 풍광이다. 바다도 이곳부터는 더 거칠어진다.


유람선 코스 중 하나인 오륙도
 
◆부산의 재발견
 
아직도 갈매기 무리가 배를 따라온다. 수백의 갈매기 떼가 배의 속도에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배의 속도와 같이 유영한다. 갈매기는 새우깡에 길들여져 있었다. 야생성은 이미 거세된 지 오래, ‘꺄악, 꺄악’ 대며 떼로 비명을 질러대는 시뻘건 눈의 갈매기들을 한 참 동안 바라보았다.
 
갈매기들이 새우깡에 환장하던 바다에서 오래전에 읽었던 <갈매기의 꿈>을 생각했다. ‘조나단’은 어느 하늘 위에서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자유비행을 하고 있을까! 아득한 수평선에도 보이지 않는 조나단을 찾느라 바다 가운데서 고개 젖힌다. 
 
오륙도를 보고 배는 다시 떠났던 곳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파도에 흔들리고 파도의 포말이 하얗게 부서지지만 바다에서 바라보는 부산, 그 육지의 풍경은 부산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부산의 재발견’이다. 
 
◆미지의 바다 송정
 
부산의 바다는 언제나 싱그럽다. 광안리 바다는 ‘젊음’이다. 해운대 바다는 편안하다. 송정 바다는 ‘미지’다. 광안대교의 야경으로 더욱더 유명해진 광안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곳에서 바다는 잠들지 않는다. 연륜의 바다 해운대는 연륜처럼 넉넉하게 모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송정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 바다 그 자체다.


송정해수욕장 전경
 
세 바다 중 미지의 바다 송정해수욕장에 정이 간다. 한 참 동안 그 바다를 서성거렸다. 물과 모래의 경계선을 따라 이곳저곳에서 아이들은 일제히 모래성을 쌓는다. 긴 해안선을 따라 아이들 마음을 닮은 모래성이 완성된다. 밀려오는 파도가 성을 부숴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너진 모래를 쓸어 모아 다시 모래를 올려 쌓고 단단하게 다져 더 높고 튼튼하게 성을 완성한다. 
 
아까부터 바닷물 속에서 햇살처럼 웃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마치 영화 ‘친구’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초등학교 고학년 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머리를 내밀거나 누가 빠른지 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바다가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면 그 희망은 아마도 아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가 불러 주는 꿈과 희망의 노래를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아이들처럼 바다에 온 몸을 던져 뒹굴었다. 아이들처럼 물장구도 치고 모래성도 쌓는다. 아이들처럼 노는 사이에 보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곡예를 부린다. 부서지는 물보라가 통쾌하고 시원하다.
 
바다에서 뒹굴고 노는 사이에 해는 기울고 또 다른 여행지를 찾아 길을 떠난다. 송정바닷가를 찾은 사람들이라면 기장에 있는 토함도자기공원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2002명이 부르는 합창
 
토함도자기공원에 가면 식당 건물 뒤를 잘 살펴야 한다. 뒷동산 오솔길로 오르는 초입부터 흙으로 빚은 토우들이 동산을 가득 메우고 있다. 모두 2002개의 토우가 일제히 입을 벌리고 합창을 하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똑 같은 표정이 없다. 다 다른 표정과 입모양에서 울리는 소리 없는 소리의 합창을 듣는다.
 
토우들이 뒷동산에 모여 이렇게 한 입을 모으고 있는 이유는 남다르다. 도예가인 한 사람이 암 진단을 받고 생의 마지막에 놓였을 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때부터 토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만의 방법으로 투병생활을 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던 것이다. 그는 귀 없는 토우, 텅 빈 토우를 만들어 세상의 삿된 소리 허튼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무심의 마음으로 참된 노래를 하자고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합창이야 말로 혼이 실린 희망의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일상의 행복에 안주하고 있을 때, 삶이 주는 고통에 힘들어 할 때, 가끔 이렇게 일탈 같은 여행을 꿈꾸자.
 
우리는 차를 달려 이번 여행 출발점이었던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올랐다. 해는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그 길에서 바라보는 해운대 야경이 꿈만 같았다.
 
[여행정보]
 
<길안내>
*송정해수욕장
자가용 :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온다면 원동IC로 나와서 재송동을 지나 부산·울산고속도로, 해운대신시가지 방향 - 장산터널을 통과 한다. 장산터널을 나와서 계속 가다가 부산·울산 고속도로 쪽으로 가지 말고 ‘기장·송정’ 방향 도로를 탄다. - 좌동지하차도로 들어가서 송정해수욕장으로 가면 된다.
(광안리해변 - 해운대해변 - 달맞이고개 - 송정해변을 차례로 둘러보려면 광안리해변에서 광안해변로를 따라 민락공원을 지난 뒤 - 수영2호교를 건너 - 해운대해변로롤 접어든다 - 해운대해변 - 해운대온천사거리에서 달맞이길로 접어든다 - 미포오거리에서도 달맞이길로 간다 - 송정해수욕장)
대중교통 : 부산역광장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시내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139번 또는 1003번 버스를 타고 송정해수욕장입구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이 버스는 해운대해수욕장도 간다)  
 
*토함도자기공원
자가용 :
송정해수욕장에서 바닷가 도로를 타고 기장으로 올라가는 길(약 7km)을 따라 가다보면 대변항 지나 도로 오른쪽에 토함도자기공원이 있다.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이 길이 많이 막힌다. 그럴 때면 송정해수욕장에서 큰 길 쪽으로 나와 철길 건널목을 건넌 뒤 기장 쪽으로 우회전해서 가는 길(약 8km)도 있다. 기장읍에 들어서 읍내까지 들어가지 말고 대변항 쪽으로 우회전해서 가다 보면 ‘토함도자기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대중교통 : 송정해수욕장 주변 송정시장 부근 테마펜션민박집 부근 시내버스정류장에서 181번 버스를 타고(기장 방향 가는 것 확인) 대변항 지나 ‘무양마을 버스정류장(토함도자기공원에서 100~200m 거리)’에서 내리면 된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약 7~8km 거리다.
 
<음식>
토함도자기공원(051-721-2231)은 갈치찌개정식이 대표메뉴다. 가격은 1인분d[ 2만4000원. 일반 정식은 1인분 1만2000원.
 
<숙박>
해운대 및 송정 해변에 호텔 빛 모텔 다수
 
<해운대 유람선 이용정보>
*해운대 동쪽 끝에 있는 미포선착장에서 오륙도까지 갔다가 다시 미포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약 1시간 코스
*요금은 대인 1만9500원/초등학생 1만2000원
*배 출발시간은 날마다 달라지므로 당일 문의 요망(문의전화 : 051-742-2525)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