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은 물론 일반가정에서도 재정을 잘 관리하려면 예산부터 잘 짜야 한다. 지난해 유럽에서는 재정위기로 큰 홍역을 치렀고 미국의 경우 재정절벽이 화두였던 것을 볼 때 재정관리는 어디에서든지 미래의 안녕을 위해 우선적으로 신경써야 할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올해 예산규모를 342조원으로 확정했다. 지난 대선에서 각 후보가 가장 큰 이슈로 내세웠던 복지와 교육 등 민생에 관련된 예산은 정부안보다 증액해 전년 대비 9% 내외로 늘었다. 복지 부문에서 무상보육 대상을 모든 소득계층의 만 0~5세로 확대하고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대학 장학금을 대폭 늘린 결과다.
반대급부로는 정부안과 비교해 일반공공행정, 국방,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이 삭감됐다. 올해 경기가 둔화돼 정부의 총수입 규모가 줄어든다는 예상 하에 총지출액도 같은 규모로 줄여서 균형재정 기조 목표를 유지하도록 했다. 기업들도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나름대로 한해 동안의 재정계획을 수립했을 것이다.
◆ 정부 예산항목과 가정 예산항목의 공통점
각 개인과 가정 역시 재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에듀푸어, 허니문푸어, 실버푸어 등 '푸어'가 들어가는 온갖 조어가 등장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재정관리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정부의 예산 얘기를 꺼낸 이유는 개인이 재정목표를 수립해 예산을 짜고 재정을 관리하는 과정도 원론적으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의 항목과 가정 예산의 항목 중 비슷한 성격의 항목도 많다.
국가 총예산 342조원 중 보건·복지·노동 항목의 예산이 97조400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그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일반·공공·행정 부문의 55조8000억원, 교육 부문의 49조8000억원에 비해 2배 가까이나 된다.
복지 항목 중에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공적연금 예산(약 33조원)이 가장 많다. 연금은 근로소득이 사라졌거나 수입이 줄어드는 노후에 받을 돈을 적립하는 것이므로 개인으로서는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돈에 비유할 수 있다. 연금공단에서 돈을 운용하고 투자하며 늘려가는 것처럼 개인도 투자를 통해 조금이라도 늘리려 한다.
정부에서 한해 동안 지출할 예산을 짜기 전에 어떤 항목의 예산을 다른 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늘리고 줄일 것인지 방향성을 설정하듯, 개인과 가정에서도 어떤 항목의 지출금액을 늘리고 줄일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정부 재정이 악화되지 않도록 균형재정을 목표로 설정하듯이 개인과 가정도 균형재정, 흑자재정, 재무구조 개선 등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그러한 목표 설정 없이 생활하면 가계금융이 악화돼 각종 푸어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누구나 많은 복지혜택을 원한다. 하지만 재정목표를 올바르게 설정하지 않고 복지를 확대한 국가들은 위기에 처했으며 건전한 재정을 전제조건으로 한 후 성장에 발맞춰 복지를 합리적으로 확대한 국가들은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달성,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가 됐다. 가정에서도 복지 명목으로 지출하고 싶은 곳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부분을 더 늘리는 것이 나을지 결정해야 한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지난해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할지, 에듀푸어가 되지 않기 위해 아쉽지만 교육비를 줄일지도 결정해야 한다. 국가예산 중 문화·체육·관광 항목은 5조원으로 외교통일 다음으로 가장 규모가 적다. 하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9.9%로 가장 최고다.
가정에서도 수입이 늘어나고 가계자산이 많아지면 그동안 잘 하지 못했던 영화관람, 여행 등을 더 많이 하게 되고 겨울에 스키장에도 한두번 가듯이 정부 역시 문화·체육·관광 성격의 지출을 늘리게 된 것이다. 예전에 워낙 적게 지출했다면 증가액의 절대규모는 작더라도 증가율은 크게 나타난다.
농림·수산·식품 분야에 배정된 18조4000억원의 예산은 증가율이 1.4%로, 일반·공공·행정의 1.2% 다음으로 가장 낮다. 가정에서 의식주 중 '식'을 위해 지불하는 돈을 크게 늘리지 않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다만 가정에서는 식품 분야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는 먹는 수준은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식품 구입을 효율적으로 하고 식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식비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의 15조5000억원과 연구개발(R&D)을 위한 예산 16조9000억원은 기업들이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지원해 궁극적으로 정부로 들어오는 세수가 늘어나게 만든다.
◆ 예산 짤 때는 총금액을 가장 먼저 결정해야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나야 결과적으로 정부에서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난다. 가정에서도 수입을 늘리기 위해 투여되는 돈이 여기에 해당한다.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에 손님이 많이 오도록 리모델링하거나 가게를 확장하는 것, 전문가에게 유료 카운슬링을 받는 것, 직장에서 일을 잘 하고 승진하기 위해서 또는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서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것, 업무성과를 높이는 데 촉매가 되는 사람과의 교제에 들어가는 돈, 투자를 잘 하기 위해 공부하는 데 소요되는 돈도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정부의 올해 SOC(사회간접자본) 부문 예산은 지난해보다 5.2% 증가한 24조3000억원이다. 이중 교통·물류 투자는 증가한 반면 국토 및 지역개발 분야의 투자는 감소했다. SOC 항목의 예산은 생산활동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원활한 경제활동에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에 들어가는 돈이다. 가정에서 비슷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돈은 주택구입 비용, 집 수리비, 교통비 등이라 할 수 있다. 또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받았던 대출을 갚기 위해 지불하는 원리금, 다른 사람 집에 주거하면서 내는 월세나 전세보증금 등 기회비용도 있다.
예산을 짤 때는 총금액을 우선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수입 대비 총지출액이 많아서 적자 재정, 적자 가계부가 돼 재무상태가 악화되면 미래 언젠가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가정에서 적자가 나면 카드 돌려 막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늘 마이너스통장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재정관리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주변 탓으로 돌리는 자세다.
"돈이 없어도 살겠다"는 강한 마음이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자가 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사교육시킬 돈이 부족하면 과외나 학원을 보내지 않고 교육 예산을 최소로 잡아도 된다. 과외를 하지 못하더라도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아이라면 학교 교재와 더불어 참고서와 EBS 등을 활용해 공부를 할 것이다.
문화 예산을 최소로 잡아 문화생활을 많이 영위하지 못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하면 어느 정도 만족할 수도 있다. 요즘은 사회에서 무료나 실비로 제공되는 문화공연과 체험의 기회도 꽤 있다.
재정상태가 상당히 빈약하다면 자동차에 대한 감가상각비와 기름값, 보험료, 유지비로 돈이 새나가지 않도록 자동차를 팔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웬만한 근거리는 건강도 증진시킬 겸 걸어다녀도 좋다. 또 사람들과 밤 늦게까지 어울리더라도 막차가 끊기기 전에 대중교통수단으로 귀가해 택시비를 절약하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어떤 경우든 균형재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산에서 분야별 비중은 각자의 사정과 살아가는 방식, 가정형편에 따라 달라야 한다. 다른 가정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자칫하면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가정에 적절치 않은 소비구조를 만들 수 있다.
복지의 한축인 저축에 해당하는 금액의 비중은 현재의 재정규모만이 아니라 미래에 직업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크다면 저축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
정부당국이 각 분야별로 예산을 배정하기 위해 여러 부처와 이해관계자, 국민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가정에서도 분야별 비중에 대한 견해를 가족들과 상의해 원만하게 조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때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대립이 심해지므로 개인이 아닌 가정이라는 집단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어떻게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