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은 최근 협력사들의 원활한 자금 수급을 위해 설 연휴 전에 자재 대금 2775억원을 조기지급하기로 했다. 평소에도 이 회사는 자재 대금을 월 3회에 걸쳐 전액 현금으로 지급한다. 협력회사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54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 펀드도 이미 조성했다.
동반성장에 기여하는 모습 외에 현대중공업은 얼마전 노르웨이에서 11억달러(약 1조16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해양설비를 수주해 주목받았다.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인 스타토일 ASA사와 원통형 부유식 선체의 상부설비인 가스생산플랫폼에 대한 계약을 맺은 것.
이 정도면 한해의 시작을 '깔끔하게' 시작한 듯 보이지만 정작 현대중공업의 사령탑인 이재성 사장은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실적부진과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재무구조 악화, 지지부진한 태양광·풍력사업 등 현대중공업을 둘러싼 '그림자'들이 여전히 선명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현대중공업이 총체적으로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위기의 2013년'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조선·해양 플랜트 실적 저조에 '휘청'
글로벌 경기침체로 조선과 중공업의 시황이 악화되면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0월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24.8% 감소한 172억6800만달러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특히 조선과 해양플랜트 부문의 수주액이 2011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47.8%와 53.7%로 급감했다. 금액만 놓고 보면 지난해 조선과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수주한 금액은 125억달러 정도로, 이는 당초 목표치인 240억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경쟁사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목표대비 수주 달성률이 각각 70%와 95%를 웃도는 것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저조한 실적이다.
영업이익 역시 하락세를 걷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3분기에 13조1990억원의 매출과 593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전년 동기대비 매출은 0.8%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35.1%나 급감했다.
실적 부진이 계속된 탓에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50세 이상 사무 관리직원들에 대한 희망퇴직을 시행해 100여명이 회사를 떠났고 지난해 끝자락에선 임원에도 손을 대 전체 임원(223명)의 10%가량을 감축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근속연수가 가장 긴 기업에 속하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자존심에 적지않은 상처를 남긴 한해였다.
그럼에도 이 사장의 시름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올해 역시 현대중공업의 실적이 반등될 확실한 요인이 없다는 데 있다. 최원경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4000억원 정도로, 시장 예상치를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같은 실적 불확실성은 올해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오일뱅크의 재무구조 악화 부담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가 유동성 기근 현상을 겪으면서 재무구조가 나빠지고 있는 것 역시 이 사장에겐 '골칫거리'로 다가온다. 지난해 현대오일뱅크는 사업부진이 계속되면서 벌어들이는 현금자산이 불과 수백억원 밖에 되지않아 부족한 영업현금흐름을 메우기 위해 차입금을 대폭 늘렸다.
지난해 2분기 현대오일뱅크는 17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전환'에 돌입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이 5조3384억원으로 전년 동기 4조3829억원 대비 증가했으나, 당기순손실이 1849억원을 기록했다. 같은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매출액 10조9460억원에 영업손실이 250억원, 당기순손실도 1084억원을 냈다.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정제마진 하락으로 영업손실이 계속된 탓이다.
차입금 규모에 있어서도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상반기 총차입금이 3조5161억원으로, 2011년 상반기 2조9433억원, 2011년 말 2조7058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자연스레 부채비율도 높아졌다. 지난해 상반기 부채비율은 234.07%를 기록했는데, 2010년 말과 2011년 말 각각 200.64%, 215.06%에서 상승한 수치다. 차입금의존도 역시 지난해 39.99%로 2011년 말 36.95%, 2010년 말 33.53%보다 훨씬 높아졌다.
재무수치 외에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범 현대가인 현대글로비스를 상대로 일감 몰아주기를 한 '진원지'로 지목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월22일 논평을 통해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오일뱅크 싱가포르와 2014년부터 10년간 1조1000억원 규모의 원유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한 것과 관련해 '친족회사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
◆믿었던 태양광·풍력 사업마저…
주력사업들이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태양광·풍력사업에 대한 실적이 시원찮은 것도 이 사장의 속을 태우고 있다.
지난 2010년 현대중공업은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에서 태양광과 풍력사업을 분리해 그린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 '향후 6년 내 매출 4조원'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전담부서가 생긴지 2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눈에 띄는 성과물을 내놓지 못한 처지다.
지난 2008년 현대중공업은 충북 음성에 연산 30MW 태양전지 공장을 세운 후 공장설비를 확대했고 2009년부터는 연산 600MW 규모의 풍력발전 생산설비도 운영해왔다. 태양광모듈 제조설비 증설을 위해 260억원, 솔라셀 2공장 설비증설에 787억원 등 2010년과 2011년에도 총 1047억원을 투자했다. 풍력발전시스템 생산설비에도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942억원을 '아낌없이' 썼다.
이처럼 현대중공업이 신에너지사업에 당찬 '출사표'를 던진 지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태양광과 풍력사업에 대한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다.
2011년 그린에너지 부문에서만 영업손실 1752억원, 당기순손실이 2257억원 기록했고 지난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 49억원, 당기순손실도 11억원을 찍었다. 그린에너지사업부의 적자 규모가 2010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지속됐다는 방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불황으로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관련 수주가 전무한 것이 그린에너지사업부의 손실을 키웠다"며 "업종 특성상 향후 기술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도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현대중공업으로선 이래저래 큰 짐을 안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