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 경영능력에 무한신뢰…"장기 집권" 여론 부담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 겸임)이 또다시 이변을 일으켰다. 국내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로서는 최초로 5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2월25일 한국씨티금융지주 이사회와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열렸다. 새 수장을 뽑는 자리였지만 긴장감은 돌지 않았다. 예상대로 지주 회장 겸 은행장 후보로 하 행장이 단독 추천됐기 때문이다. 그의 연임은 오는 3월29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하 행장은 새로운 임기 3년을 채우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15년간 씨티은행장을 맡게 된다.
 
하 행장이 5연임에 성공한 이유는 미국 씨티그룹으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씨티은행이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매년 꾸준한 실적을 보였고 특유의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도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풀이진다.
 
그의 대표적인 공로는 2000년대 초 위기에 빠진 한미은행(현 한국씨티은행)을 살려낸 일이다. 1998년 외환위기로 국내 금융권이 통폐합 될 때, 당시 한미은행 역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았다. 당시 한미은행은 2000년 초반 4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겪으며 존폐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미국 씨티그룹은 2001년 5월 해결사로 하 행장을 선택했고 이후 1년여 만에 씨티은행은 약 2000억원의 실적을 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씨티은행 내부에 하 행장과 겨룰 만한 경쟁자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점도 이번 연임에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하 회장의 뒤를 이을 만한 인물이 없다"면서 "당초 씨티그룹 내에서는 외국인 행장 선임 여부를 검토했지만 우리나라 국민정서 등을 이유로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정서 무시한 장기집권… 과제 산더미
 
"연임을 해서 그런지 표정이 굉장히 좋아보인다. 하지만 노조와의 갈등 때문인지 속내는 그렇게 편하지 못한 것 같다." (씨티은행 고위 관계자)
 
하영구 행장의 연임에 대해 씨티은행 내부는 크게 엇갈린다. 최장수 은행장으로서 당연하다는 입장과 장기집권에 대한 거부감이 교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씨티그룹이 한국정서를 무시한 채 하 행장만 너무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가장 큰 불만은 노사간의 불협화음이다. 이 때문에 하 행장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은행 노조는 최근 '하영구 행장 5연임 성공 은행장이 직업?'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그의 연임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조 관계자는 "그의 5연임은 뛰어난 리더십보다는 CEO 대안 부재가 실질적인 원인"이라며 "장기집권으로 금융권 안팎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내부사정을 잘 아는 것도 직원들 사이에서는 단점으로 꼽힌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하 행장은 씨티은행의 내부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임직원들이 어떤 성향인지도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렇다보니 때론 직원이 맡아야 하는 일까지 행장이 간섭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창의력보다는 행장 스타일에 맞추는 업무체제를 간접적으로 강요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금융시장에 불어 닥친 글로벌 악재를 방어하는데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금융시장의 경우 경기침체와 저금리 기조로 금융환경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하 행장이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대외금융 환경 악화를 구조조정과 지점 통폐합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씨티은행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잇따라 축소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씨티은행은 한미은행과 합병 직후인 2004년 말 시장점유율이 6%대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절반인 3%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올해 1~2월 영업점 15개를 폐점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내부 직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하 행장은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3차례에 걸쳐 희망퇴직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약 600여명의 직원이 은행을 떠났다. 반면 신입행원 채용은 축소시키고 있다. 지난 4년간 공채로 채용한 신입행원은 100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말이다.
 
씨티은행 노조는 "하 행장이 임기 중 씨티그룹 뉴욕본사의 비용절감 지침만을 따르고 영업점 폐점, 구조조정 등에만 몰두하고 있다"면서 "그의 장기집권으로 씨티은행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조직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누구보다 씨티은행 사정을 잘 알고 있어 거친 파도에도 무난히 넘어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대형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면서 "하지만 씨티은행의 경우 매년 이익을 내며 잘 버티고 있다. 이는 그만큼 하 행장의 경영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영구 행장은?
 
1953년생인 하영구 행장은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해 자금부 수석딜러와 자금담당 총괄이사, 투자금융그룹 대표, 기업금융그룹 대표 등을 거쳐 1998년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비자금융그룹 대표를 역임했다. 2001년 한미은행장을 거쳐 2004년 11월 통합 한국씨티은행장에 올랐다.
 
그가 한미은행장이 되면서 금융권 최초의 40대 은행장 시대를 연 바 있다. 업무에 철두철미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직원들을 아끼고 감싸줄 수 있는 온화한 성품을 갖췄다는게 주위의 평가다.
 
중용을 지킬 줄 아는 합리적인 성격으로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모습 또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경기고, 서울대 상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