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형 상품이 노후 효자… 자산관리, '적립'보다 '인출'에 초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사육사가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하자 화를 내던 원숭이들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겠다고 했더니 기뻐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얘기에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왔던 중요한 사실이 내포돼 있을지도 모른다. "사육사가 아침에 원숭이에게 물어봤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만약 사육사가 저녁에 원숭이에게 가서 '저녁에 4개, 아침에 3개'라고 물었더라면 결과는 어땠을까. 아마 당장 하나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하지 않았을까?"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 노후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한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라고 풀이했다. 우리 사회가 아침보다는 저녁에 가까워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점점 '저녁'에 가까워져가고 있는 이 시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는 없을까. 자타가 공인하는 은퇴전문가인 김 센터장은 최근 <스마트 에이징>(청림출판 펴냄)이라는 책을 펴냈다. 부제처럼 '늘어난 내 인생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법을 담았다. 단순히 노후준비가 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김 센터장은 "고령화시대의 달라진 사회상을 살펴보고, 노후준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고민해보는 것이 스마트한 노후준비의 출발점"이라고 제시했다.

사진_류승희 기자

◆ 장수리스크, "돈이 남느냐 vs 내가 남느냐"

"노후자금 문제는 한 마디로 돈이 남느냐, 자신이 남느냐의 문제다. 자산관리를 잘못하면 나의 수명보다 돈의 수명이 먼저 다할 수 있다."

흔히 나이 들어서는 '돈이 효자'라고 한다. 돈 없는 노년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100세시대'에 죽을 때까지 쓸 돈을 과연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김 센터장이 제시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돈의 수명과 나의 수명을 일치시키면 된다." 바로 종신상품을 통해서다. 국민연금이나 일반 개인연금의 종신형 상품은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으므로 돈과 개인의 수명을 일치시킬 수 있다.

고령사회라는 환경 변화에 따라 자산관리의 초점도 바뀌어야한다. 지금까지는 종잣돈으로 목돈을 만드는 '적립'이 자산관리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모아둔 노후자금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 하는 '인출'에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것이다.

"흔히 노후준비를 하라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는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만들어가려니까 힘든 것인데 생각을 바꿔야한다. 현재 갖고 있는 것 중 노후에 쓸 것을 정하는 '선택'의 문제로 다가가야 한다."
 
그는 은퇴를 앞둔 40~50대라면 특히 노후를 위해 어떤 것을 할당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시작은 현재 자산에 대한 점검이다.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알아야 황당한 노후 목표를 세우지 않을 것이며,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배우자와 함께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비롯해 주택 등의 자산을 점검해보라"고 조언했다.

생활 규모와 소비 규모를 줄여나가는 '다운사이징'도 고민해봐야 한다. 저성장시대를 맞아 일자리는 줄고 소득은 급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후준비의 화두도 과거의 "풍요롭게 잘 살자"에서 효율적인 다운사이징으로 전환돼가고 있다.

"다운사이징을 위해서는 우선 소유할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파트나 자동차처럼 시간이 갈수록 감가상각이 일어나 그 가치가 떨어진다면 굳이 사서 쓸 필요가 있는지 숙고해보자."

금융IQ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금리가 높아 자산을 마련하기가 쉬웠지만, 이제는 수명이 늘어난 만큼 준비자금도 많이 필요한 대신 노후자금을 굴릴 만한 수단은 적어졌다. 김 센터장은 "고령자와 투자는 쉽게 매칭되지 않지만, 앞으로는 국내는 물론 해외투자까지 시각을 넓히는 등 금융IQ를 높이는 노력이 절실해졌다"고 강조했다.
 
인간관계, 직장→'가족, 지역사회'로
 
은퇴는 소득의 단절일 뿐 아니라 직장을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의 변화를 뜻한다. 그동안 회사 중심이었던 인간관계를 가족과 지역사회로 전환하는 대비를 해야 한다.

"휴대폰 연락처에서 업무와 관계된 사람들을 지우고 나면 몇 명이나 남을까? 딱히 업무 외 인간관계가 없다보니 일본에서는 은퇴한 상사가 전 직장 후배에게 전화해 일을 시키는 일종의 정신질환도 등장했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요즘, 가족과의 소통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 "은퇴 후 남편은 이제 집에서 쉬어야지 생각하고, 평생 집안일만 했던 아내는 이제는 나가야지 생각한다." 김 센터장이 말하는 은퇴 후 부부갈등의 한 원인이다.

그는 원만한 은퇴 후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전업이 아니더라도 일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을 하게 되면 주변사람들과 친분을 다지며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고, 집안에서 온종일 아내와 부딪히며 겪는 갈등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혼자 사는 1인 고령가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당부했다. "고령층일수록 혼자 사는 여성 노인들이 많은데 국민연금 등 모든 사회제도는 아직도 남자 중심이라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