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의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이달 중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5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투자은행(IB)업무의 범위가 다소 축소되는 등 일부 수정사안이 있었지만 거의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번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IB 활성화,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 도입, 조건부자본증권제도 등 기업 자금조달수단의 다양화, 중립적 의결권제도(Shadow Voting) 폐지 등이다.
수정된 사안으로는 ▲헤지펀드에 대한 신용공여범위 확대 조항 삭제 ▲기업 신용공여한도 자기자본의 25%로 제한 ▲계열회사 지원방지 위한 대출 금지 ▲거래소의 자회사 ATS 보유관련 조항 삭제 등이 있다.
어쨌거나 이번 개정안을 놓고 보면 증권업계에 호재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간 질질 끌어오던 법안이 통과되면 증권사들도 새로운 먹거리에 나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업계 구조재편 가능성 높아져
시장에서는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관련해 증권업계에 대한 신정부의 우호적인 정책방향이 확인된 것은 긍정적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업계의 구조재편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다희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경기의 불확실성에 따른 주식의 거래대금 감소와 수수료율 하락 등으로 국내 증권사의 이익체력(ROE 2~3% 수준)이 크게 낮아진 상황"이라며 "향후 개인투자심리의 회복 시점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정부의 증권업에 대한 역할 확대는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법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당장 증권업계의 수익이 눈에 띄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전 정부의 증권업계에 대한 정책방향이 성장보다는 규제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정부의 증권산업 육성의지는 브로커리지 중심의 국내 증권사 수익모델 한계를 극복해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 애널리스트는 "중장기적으로 업계의 구조재편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현재 국내 대형증권사와 중소형증권사의 수익모델이 대동소이한데, 이번 법 통과를 계기로 중장기적으로 자본력에 따라 국내 증권사 간의 역할 재편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태경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업여신 제공한도가 원안 대비 4분의 1로 줄었고, 자본규제 완화도 원안에서 퇴보했다"며 "재무제표를 가시적으로 변화시키기에는 내용이 다소 약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투자심리 개선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ATS 도입, 중장기적으로 호재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ATS와 관련해서는 도입 효과가 향후 2년 내에 크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지금 바로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어서 시스템 개발과 법인 설립 등에 최소 반년 이상이 소요되고, 기술적인 문제와 집적효과(시장 참가자가 늘어야 상호작용이 늘어나는 효과) 문제까지 감안하면 추가로 1년가량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실제로 호주에서도 Chi-X 도입 후 1년 경과시점까지는 시장점유율이 3% 미만으로 변화가 미미했다"며 "또한 호주는 정규거래소인 ASX의 주식거래 수수료가 25bp에서 15bp로 낮아졌지만 한국거래소(1bp 미만)와는 사례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대체거래소 도입에 따른 수혜주를 지금 찾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체거래소 설립으로 증권거래의 경쟁체제가 도입돼 제반 거래비용의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더불어 한국거래소의 IPO 추진이 가능해짐에 따라 거래소의 지분을 보유한 증권사들의 보유지분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도 호재다.
전세계 거래소 중 비상장 상태에 놓여있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 동경거래소도 지난 1월 상장을 마무리했다. 흥미로운 것은 주요 거래소의 밸류에이션이다. 홍콩거래소는 PBR이 증자 전에 15배였고, 싱가포르거래소는 8배, 최근 상장한 동경거래소도 4배를 넘나든다.
정길원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는 높은 ROE와 독점적 지위, 제로에 가까운 디폴트 리스크 등에 따른 결과"라며 "향후 (한국거래소 IPO) 진전 추이에 따라 지분을 보유한 증권사의 자산가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주, 자본시장법보다 정책 방향성이 문제
자본시장법 통과가 증권사들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지만, 의외로 업계는 잠잠한 모습이다.
글로벌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법안통과로 인한 당장의 수익 제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법 통과는 호재가 맞지만 중장기적으로 변화의 초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증권업계의 수익구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브로커리지다. 즉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추세적인 실적개선이 쉽지 않다는 소리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자본시장법의 정무위 통과는) 증권업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인 시각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일부 전문가의 주장과 달리 자본시장법이 증권사간 차별화의 계기가 되거나 증권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기엔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가 단기적으로는 큰 호재로 작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시행이 돼도 증권사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정책방향의 변화가 증권주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길원 애널리스트는 "당분간 증권업종의 주가 변수는 실적보다는 정책의 방향성"이라며 "자본시장법의 개정뿐 아니라 미뤄진 정책 이슈들이 진전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4월 초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밝힌 자본시장 관련 내용을 보면 ▲실물산업 지원을 위한 정책금융 및 자본시장의 역할 강화 ▲미뤄진 민영화의 조속한 추진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는 "이는 모두 증권사들의 장기적인 수익성과 지배구조에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라며 "우호적인 정책환경,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감 등도 주가 방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