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류승희 기자
자연환경·문화로 만들어낸 그들만의 스타일로 세계 평정

스칸디나비아 가구에는 안락함이 묻어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의 여성문화가 배어 있는 까닭이다. 마치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부드러움과 포근함에 실용성까지 더해지면서 북유럽 스타일은 전세계적인 스칸디나비아 열풍의 근원이 됐다.

실제로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은 여성 위주의 사회문화가 두드러진다. 유독 여성수장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넉넉하게 갖춰져 있다. 여성들은 혼자서 자녀를 키울 경우 수입이 있더라도 정부로부터 재정적 보조를 받는다. 여자가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비율도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이혼 후에는 남편 재산 중 50%에 대한 권리가 부여된다. 따라서 미혼모나 이혼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난하게 사는 경우는 이들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반대로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의 남성들은 어떨까. 오랫동안 이어져 자리 잡은 여성위주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체로 가정적인 편이다. 이곳 남성들 중 대다수가 집과 정원을 꾸미는 취미를 갖고 있을 정도로 주거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는 예로부터 리빙문화가 잘 형성됐고 안락함과 실용성을 중요시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 완성됐다.
사진=류승희 기자
사진=류승희 기자
◆독보적 환경의 산물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유럽대륙의 영향을 뒤늦게 받았다. 따라서 그 국민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재료에 관한 연구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19세기 초에는 가내수공업이 성행했으며 점차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윤곽이 잡혀갔다.
 
19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은 산업 효율성과 기능주의의 범위에서 벗어나 농업과 공예문화를 융합했다. 덴마크는 효과적인 산업을 마련하는 비옥한 농지를 소유하며 영국을 향해 열린 긴 해안선의 영향을 받았다. 노르웨이는 피오르드와 작은 마을들로 인해 다양한 지역전통과 공예가 발달했다. 스웨덴도 러시아와 독일로 눈을 돌려 그들의 공예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후 1925년 프랑스 파리전시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1930년 스톡홀름박람회, 1933년 시카고세계전시회, 1937년 파리전시회, 1939년 뉴욕전시회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북유럽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동떨어졌던 점은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완성을 확고히 했다. 이들 국가는 화목한 가정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또한 한정된 자원은 특징적인 지방요소를 만들어냈다. 안락한 일상생활을 위해 자유롭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태어났으며, 이는 당시 화려함으로 국한됐던 디자인에 대한 관념을 절제미와 부드러움, 안락함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이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1950~1970년대의 황금시대를 맞으며 변화에 앞장섰다.
사진=류승희 기자
◆변치않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매력

스칸디나비아는 옛 가구의 특성을 과감히 버렸다. 아예 참고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른다. 화려한 디자인과 장식 등을 강조하던 유행을 뒤로 한 채 실용성에 무게를 둔 현대가구를 단풍나무, 자작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으로 제작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태국에서 수입한 티크, 마호가니, 향나무, 호두나무를 사용하며 인기를 더했다.

특히 명확하게 자른 선, 자연적인 곡선, 부드럽고 둥글게 각진 가장자리, 칠하지 않은 원목 등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시대의 발달은 플라스틱, 폴리우레탄, 우드베니어 등을 개발해냈고 이를 가구재료로 사용하면서 기능성까지 갖췄다.

이처럼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은 화려함보다는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개성이 느껴지는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2000년대 이후 재조명되면서 현재까지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고 다른 가구나 소품과도 잘 어울리는 매력은 여전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