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칼같이' 인사는 '철저히'

"매일 아침 5시30분에 108배를 합니다. 1658일(9월6일 기준)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약 4년7개월 정도 됐습니다. 저의 소망은 초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혁신과 파격인사의 아이콘 조준희 기업은행장의 말이다.

조 행장은 취임 이후 기업은행을 모든 국민이 거래할 수 있는 은행으로 바꾸고 '황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원칙 인사를 주도해왔다. 수천명의 인사를 하루 만에 마무리하는 '원샷 인사'도 그의 손을 거친 인사시스템이다. 기업은행 설립 이후 첫 내부 출신 행장이 발탁돼 화제를 모았는데, 그의 경영스타일 역시 금융권에서 이슈로 회자되고 있다.

조 행장은 약속을 지키는 행장으로도 유명하다. 임기 내 중소기업 대출 최대금리를 한자릿수로 줄이겠다고 취임 초기에 밝혔던 공약을 최근 실천했다. 기업은행 중소기업대출 최고금리는 현재 9.5%다. 국민·우리·신한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가 최대 17%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낮다.

여자배구단과의 약속도 지켰다. 지난 3월 배구팀 주장 이효희 선수에 이어 5개월만에 알토스 여자배구단에서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는 남지연 선수를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키로 한 것. 신망과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과 임직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의 임기가 불과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올 12월27일까지다. 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9월6일 오후 2시 기업은행 본점 10층 집무실에서 조준희 행장을 만났다. 조 행장의 첫 인상은 여느 최고경영자(CEO)와는 달랐다. 1만3000여명의 엘리트 직원과 중소기업 자금줄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 허리를 책임지는 CEO인데도 권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때론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과 밝은 미소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제시했다.

<다음은 조준희 행장과의 일문일답>

-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연임설이 나오고 있는데요.

▶언제든 물러나라고 하면 물러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 (그만 두겠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임명권자가 있는 기관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어진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기업은행의 미래와 직원들을 위해 연임 여부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원샷인사가 금융권에서 화제입니다. 인사에 대한 철학이 궁금합니다.

▶인사란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훌륭한 인재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발탁인사를 통해 더 키워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 승진에 누락된 사람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기업은행 직원들의 인사카드를 보면 아시겠지만 승진에 누락되거나 좌천된 사람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 책상에는 아직 검토하지 못한 인사관련 서류가 2000건이 넘어요. 공정한 인사시스템을 어느 정도 구축했지만 제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인재들이 있지 않을까 서류를 또 보고 있어요. 내부적으로 불만을 없애기는 힘들겠지만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 원칙인사를 단행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나요.

▶제가 행장으로 취임할 때 저와 가까웠던 임원이 몇명 있었어요. 그들은 제가 행장이 됐으니 자연스럽게 승진할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들을 승진 대상에 넣지도 않았어요. 과거의 업무능력과 실적이 만족스럽지 못했거든요. 서운했는지 제 방에 찾아왔어요. 저는 그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우리가 친하다는 것을 모든 직원이 알고 있는데 (인사 청탁)하러 오면 어떻게 하느냐, 오히려 내가 공정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옷을 벗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이죠. 물론 그들은 저한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어요. 은행원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많은 경험과 추억을 함께 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들도 처음에는 제 말에 서운했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저를 더 응원해주더라고요.

- 취임 후 개인 고객수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생 등 미성년자 가입률이 높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강화한 것은 맞습니다. 다만 실효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미성년자들의 가입률이 오른 것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는데 이유는 경쟁은행들이 벤치마킹할 것 같아서입니다. 잠재고객 육성을 위해 유치원과 초등학생 마케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치원에서는 학부모와 자녀 사이에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요. 한두명만 고객이 되면 입소문을 통해 더 많은 예비고객을 유치할 수 있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예·적금과 방카슈랑스 등 고객이 필요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기업은행이 국내 전 지역의 유치원을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차별화된 마케팅을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할 예정입니다.

- 요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108배를 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행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 직원들에게 손가락질 만큼은 받지 말자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정심과 초심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까지 기업은행과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프로필
 

▲1954년 경북 상주 출생 ▲1980년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1980년 7월 기업은행 입행 ▲2001년 기업은행 동경지점장 ▲2004년 기업은행 종합기획부장 ▲2007년 기업은행 경영지원본부장 ▲2008년 기업은행 개인고객본부장 ▲2008년 기업은행 전무이사(수석부행장) ▲2010년 12월 기업은행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