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목 기자
"짓궂다는 표현을 넘어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남기는 고객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보험에 가입하겠다는 말은 흔한 농담이 됐어요. 이 바닥에도 통신사처럼 우리를 보호해주는 제도가 하루 빨리 도입됐으면 좋겠습니다."

보험사 콜센터 상담원의 하소연이다. 그는 기자와 담소를 나누던 중 통신 및 홈쇼핑업계에서 콜센터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CIP(Complaint Important Person: 악성 민원 고객) 관리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통신업계와 홈쇼핑업계는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인 콜센터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CIP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1월부터 감정노동자 보호시스템을 신설했다. 고객이 언어폭력을 행사할 경우 두차례의 경고가 날아간다. 이후에도 반복되면 상담원은 성희롱이나 폭언 및 욕설을 눌러 경고를 알리고 상담을 종료한다.


KT 역시 성희롱이나 폭언을 반복하는 고객을 관심고객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특히 그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고소·고발함으로써 상담사를 지켜준다. SK텔레콤 역시 올해부터 상담사 보호프로그램을 강화해 욕설 등을 일삼는 고객을 따로 관리한다. 심한 경우에는 역시 고발할 계획이다.

그러나 보험권을 포함한 국내 금융업계에서는 감정노동자 보호가 매우 미흡하다. 어느 업종보다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금융권이지만 악성 민원인에 대한 대처나 콜센터 직원에 대한 보호에는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보험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우선 고객과 언쟁을 벌이는 일 자체가 회사 이미지나 기업의 평판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특히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수많은 정보공유가 가능해진 현실에서 고객이 회사에 자칫 불리한 글이라도 올리면 이유를 막론하고 금융사가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 다른 이유는 금융권 감정노동자들은 고객과의 전화상담 중 먼저 통화를 종료할 수 없어서다. 일종의 불문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와 같은 이유를 들며 "콜센터 직원들이 참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보험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미지와 고객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보험사로서는 감정노동자가 '감정적'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소비자 외에도 직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사 직원을 회사가 보호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은 감정노동자 중 38%가 중증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 중 유일하게 폭언을 하는 고객으로부터 상담원을 지켜주고 있는 현대카드는 이 제도를 시행한 후 실제 상담이 시급한 고객이 더 빨리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감정노동자 보호가 소비자 이익증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금융회사들이 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