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새해가 밝았지만 증권업계는 여전히 어두운 기운이 역력하다. 증권업계의 부진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부진의 늪에 빠진 증권업계를 살리려는 금융당국의 대책마련도 몇차례에 걸쳐 나왔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에 증권사들은 악화된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실 증권사들은 이미 영업사무소나 현지법인 형태로 해외에 진출한 상태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수익을 내지 못해 2010년부터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준 국내 증권사는 14개 국가에 진출해 총 65개 점포를 보유 중이다. 이 중 11개 지역에서 적자가 발생했으며 흑자지역은 홍콩,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3개 지역에 불과했다. 적자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0회계연도 기준 6670만달러였던 해외점포의 당기순손실은 2011년 9080만달러로 확대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외점포가 수익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점포를 정리하는 증권사들이 늘어났다. 지난해 신한금융투자증권과 아이엠투자증권이 일본 사무소를 정리했으며, SK증권은 베트남 사무소를 철수시켰다. 이에 증권사들은 부동산이나 상가 등 직접투자 형태로 해외투자전략을 바꾸고 있다.
▲ 미래에셋자산운용 상하이타워 ◆해외 자원개발·호텔·쇼핑몰에 투자
해외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대우증권이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12월 전략기획과 해외사업 및 신사업부서를 통합해 대표이사 직속 '전략기획본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전략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신사업 발굴은 물론 해외거점 관리기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같은 달 국내 증권사 최초로 미얀마 양곤의 호텔 및 서비스드 레지던스 개발사업 투자를 결정했다. 이번 투자는 대우증권(금융)을 비롯해 대우인터내셔널(시행), 포스코건설(시공), 호텔롯데(운영) 등의 합작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대우증권은 총 사업비 2억2000만달러 중 1억9000만달러를 자기자본으로 투자했으며 나머지는 각 주주사의 지분참여로 조달했다.
대우증권 측은 "해외투자가 주로 PF팀을 결성해 이뤄지는 만큼 아직 뚜렷한 계획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올해도 투자는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증권의 해외투자 확대의지는 대표이사 신년사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기범 대우증권 대표이사는 과다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이머징마켓, 선진국별로 차별화된 해외공략 전략을 통해 헤쳐 나갈 것임을 내비쳤다.
현대증권도 해외 상가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8월 일본 도쿄도 에도가와구에 있는 일본 최대 소매유통업체 이온그룹의 니시카사이 쇼핑몰을 900억원에 인수한데 이어 10월에는 영국 런던 패딩턴 지역에 있는 12층 오피스빌딩 '워터사이드'를 약 3519억원에 인수 계약을 완료했다. 여기에 들어간 현대증권의 투자금액은 각각 469억원, 525억원이다.
이 중 니시카사이 쇼핑몰은 이온그룹과 쇼핑몰 건물 전체를 오는 2024년 7월까지 연 임대료 60억원에 임대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연평균 8.6%에 달하는 배당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현대증권 측은 예상했다.
올해 첫 해외투자도 벌써 진행 중이다. 현대증권은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요츠야빌딩을 71억5900만엔(약 787억5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1월 중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현대증권의 자체 조달비용은 331억7000만원이며, 일본 현지 메트라이프아리코생명보험으로부터 나머지 금액을 대출받아 계약을 진행했다. 현대증권 측은 이번 요츠야빌딩 매입으로 연평균 7%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2년 데보니안 해외자원개발 PEF를 설정해 지난해 9월 캐나다 벨라트릭스사와 캐나다 타이트 오일가스 공동개발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투자규모는 총 1억4000만달러다. 한국투자증권의 PEF팀은 타이트 오일가스를 생산 중인 벨라트릭스사의 지분인수를 통해 밥티스트지역에서 공동으로 오일가스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송기진 한국투자증권 AI M&A팀 차장은 "이번 투자를 통해 관심이 집중되는 북미시장에 진입할 것"이라며 "올해는 국내공기업이 보유한 해외에너지자산 인수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미래에셋자산운용 시카고 빌딩
◆무리한 해외투자는 '위험'
미래에셋그룹은 증권이 아닌 자산운용 위주의 해외투자가 활발하다. 지난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사모펀드(PE)가 미국 커피빈 본사(Coffee Bean & Tea Leaf)를 인수한데 이어 시드니 포시즌호텔과 시카고 225 웨스트 워커빌딩을 매입했다.
이러한 증권사들의 해외투자에 대해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국내시장이 포화인 상태에서 해외투자를 통해 수익 다변화를 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것. 김태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해외진출이나 투자를 통해 자국시장의 포화현상을 극복했고 이것이 지속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수익의 지역적 다각화는 안정적 수익 기반을 제공해주는 만큼 해외투자는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 미래에셋자산운용 브라질 호샤베라 타워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보통 부동산이나 자원개발 등 해외투자에 대한 성과가 단기에 나타나기 어려운 만큼 현재 수익이 악화된 상태에서 투자만 늘리면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투자 확대는 수익이 많이 날 때 이뤄지는데 수익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를 늘리면 자칫 비용만 발생하고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증권사의 경우에도 자국에서 높은 이익을 얻은 다음 투자를 늘린다는 게 서 애널리스트의 설명이다.
박신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투자가 일시적인 수익창출이 아닌 장기적인 수익기반 확보가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해야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