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식의 뒷바라지가 먼저인가, 내 노후자금이 먼저인가'를 다룬 적이 있다. 출연진의 투표결과 '내 노후자금이 먼저'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자식 뒷바라지가 먼저'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자녀교육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삶의 가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에듀푸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지 이미 오래고 자녀에게 조건 없이 투자하려는 부모를 어찌 탓할 수만 있을까. 하지만 자신의 노후를 담보로 자녀에게 무한투자를 하는 것은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 에듀푸어의 삶이 아닌 '실버리치'의 삶을 위한 키워드를 살펴보자.
4050세대 : '강남식 과외비' 지출, 강남학원장 노후자금으로
지난 2012년 통계청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소비지출은 2311만원(가계지출 3069만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48만원으로 식료품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40~50대에서는 소비지출이 2782만~2983만원으로 높아지고 교육비 비중도 평균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약 2배가량 늘어난다. 식료품을 제외하면 40대 가구는 교육비(23.0%) 지출이 가장 많다. 자녀교육에 가장 민감한 세대라는 뜻이다.
강남에 사는 맞벌이부부 김진영씨(48·가명)는 첫째 아이가 고2로 올라가고 둘째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한달에 두자녀 교육비만 4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월수입이 900만원가량 되지만 모아둔 돈이 없다"는 말속에는 자식을 위해 전 재산을 투자하고 직장마저 포기하는 강남공화국 부모의 단면이 엿보인다. 과연 대한민국에 이런 가정이 얼마나 될까. 매월 400만원을 연복리 4%로 3년간 저축하면 약 1억5000만원이 된다. 5년 동안 모으면 2억6000만원이다.
1억5000만원은 은퇴 후 부부가 매월 200만원의 생활비를 약 10여년 동안 쓸 수 있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강남과외비에는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고 한다. 한 입시학원의 교육컨설팅 실장은 "강남엄마들은 과외비가 낮을 경우 교사의 실력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일부러 200만~300만원씩 과외비를 뻥튀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뜸한다.
또 강남에서는 브로커를 통해 교사를 소개받는 경우가 많은데, 교사들은 브로커와 친분을 쌓기만 하면 가격을 높이는 게 쉽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자녀들의 성향, 수준, 공부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무작정 사교육'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결국 강남학원장의 노후자금을 대주는 꼴이다.
3040세대 : 자녀 영어, 경쟁력 있는 부모가 가르쳐라
수년 전 GOD라는 그룹이 내놓은 '길'이라는 곡이 있다. 그 곡 중에 가사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은 자녀의 꿈보다 부모의 꿈이 먼저인 것 같다. 특히 20∼30대 부모의 경우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인 데다 1990년대 IMF 이후 직장을 얻은 세대로 취직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다보니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아바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30대 부모들은 지금 행복한지, 그리고 정말 하고 싶었던 꿈을 이뤄가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특히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30∼40대의 경우 노후생활비 규모가 늘어나지만 노후를 위한 저축규모는 낮은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다한 교육비 지출이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부모가 30대라면 자녀는 초등학생 정도인데 이들에게 과도한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조기 영어교육 열풍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들이 받는 영어교육은 부모도 알고 있는 영어 수준이므로 부모가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지금 30대의 경우 대부분 토익이나 토플시험을 치르고 직장을 다니는 경쟁력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30~40대들은 어디에 돈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현재 수준의 노후준비로는 은퇴 후 최소생활비 수준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5060세대 : 취업스펙 자녀 아닌 중장년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지난 1월24일 발간한 '2013 통계로 본 서울남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취업자 중 60세이상 취업자가 2012년 처음으로 20대후반 (25~29세) 남성 취업자를 추월했다. 특히 2006년부터 남성 취업자 중 아버지 세대인 50대(47만9000명)가 자식 세대인 20대(46만5000명)보다 많아져 두 세대간 고용지표 격차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060세대들이 이렇게 다시 취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복지재단이 55세이상 서울시민(취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19.9%만이 주관적 경제상태를 '좋은 편'이라고 응답했고 '보통'이 47.7%, '나쁜편'이 32.7%에 달했다. 퇴직 후 일하고 싶은 이유는 10명중 3명이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100세 시대는 오히려 중장년층에게 오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생계를 위한 목적이든 좋아하는 취미든 상관이 없다. 노후는 누구나 반드시 맞아야 할 경제적·정신적 지출의 시기이자 생애설계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인생 2막1장'의 성공적 삶을 위한 스펙비용은 오히려 자녀가 아닌 5060 중·장년층에게 더 필요하다.
자녀 뒷바라지·내 노후대비, 모두 포기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자녀 뒷바라지의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닌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교육상황에서 만약 자녀교육비와 내 노후대비를 모두 포기할 수 없다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재 보유 중인 가용자산의 합리적인 자산배분과 준비가 필요하다.
예컨대 현재 자녀의 시기(초·중·고 등)에 따라 소득이 곧바로 교육비로 지출되지 않아야 한다. 곧 사용될 교육비는 단기금융 상품에, 10년 이내에 사용될 교육비는 예·적금이나 적립식펀드로, 10년 이후에 사용될 교육비는 장기저축성 비과세 상품 등으로 구분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사교육비는 노후대비의 적',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은 마이너스 수익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부모의 미래를 담보로 한 무한투자는 자녀의 참 미래를 위해서도, 부모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적절한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