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미국의 트레버 올슨(당시 19세)은 현대자동차의 2005년 모델 '티뷰론'을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넘는 대형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트레버 올슨과 동승자인 사촌동생 태너 올슨(당시 14세), 그리고 마주오던 차량의 동승자 등 총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린 청소년들의 비극에 미국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유족들은 티뷰론의 조향 너클(구동조향기능 장치)이 부러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현대차의 제조결함을 주장, 즉각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현대차는 사고 직전 차 안에서 불꽃놀이 화약 폭발의 흔적이 있었다며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발생 가능성을 주장했다.
◆화난 배심원에 주가 멈출라
지난 13일(현지시간) 이 소송에 대한 배심원의 평결이 발표됐다. 미국 몬태나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현대차의 제조결함이 원인이라는 유족 측 주장에 손을 들어주며 2억4000만달러(약 2470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평결을 내렸다.
현대차는 운전자 부주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즉각 항소 입장을 전했다. 크리스 호스포드 현대차 미국법인 대변인은 "이번 사고는 현대차의 잘못이 아니므로 평결이 뒤집혀야 한다"는 성명을 전달했다.
갑작스런 발표였다. 현대차의 주가 반등에 '급브레이크'가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배심원 평결이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예상치 못하게 징벌적 손배 판결이 나왔다"면서 "투자심리에는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겠다"고 진단했다. 고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가 최근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대규모 리콜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어린 청소년들의 사고이기 때문에 현대차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좋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평결이 최근 제너럴모터스(GM), 토요타 등 완성차업계의 잇단 '대규모 리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미국사회의 여론이 무겁게 흘러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평결에서 배심원은 몬태나주가 징벌적 배상의 상한선으로 지정한 1000만달러를 훌쩍 넘긴 2억4000만달러를 현대차 측에 부과했다.
미 몬테나주 법적기준의 24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업계에 대한 미국민의 분노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 애널리스트는 다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최근 끓어오르는 자동차시장의 상황에 타격을 줄 만큼은 아니다"며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우려만큼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쏘나타의 엔진룸 조립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앞서나간 고민" 배심원 평결일 뿐
전문가들은 ▲배심원 판결로 이후 이의신청·판결·항소의 과정이 남은 점 ▲패소 시 제조물책임(PL)법상 보험사가 보상하는 점 ▲현대차 영업익(혹은 자산) 대비 미미한 배상금액인 점 등을 이유로 들며 재무적 리스크는 제한적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채희근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좋지 못한 이슈긴 하나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항소과정과 최종판결까지 수년이 걸릴 문제다. PL법상 실제 비용발생은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홍진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배상금액 자체가 그렇게 크다고 볼 수 없다"며 현대차의 자산 비중과 비교하면 액수가 미미한 점을 지적했다.
같은날 현대차가 발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의 1분기 말 현금성자산은 7조8145억1400만원, 영업이익은 1조9383억9200만원이다. 법적기준을 넘어선 2470억원의 손배금액이 설사 유지된다 하더라도 현대차의 자산 비중에 큰 영향을 끼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 실제 이날 현대차의 주가는 전날(14일)보다 0.84% 오른 23만9500원을 기록해 배심원의 평결이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반기, 신차 스케줄 등 실적 모멘텀 예상
전문가들은 이번 배심원의 평결 전 내놓은 현대차의 하반기 시장에 대한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향후 별다른 이슈가 없는 한 '브레이크'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차 스케줄과 해외공장 신설 등 국내외 상황이 현대차 주가에 밝은 전망을 예상케 한다는 것이다.
2분기부터 시작된 현대차의 신형 스케줄은 특히 대형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현대차의 신형 제네시스가 미국시장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오는 6월 LF소나타의 생산 및 판매가 예정돼 있다. 박영호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와 관련 "LF쏘나타를 기준으로 한 신차 사이클을 시작으로 핵심시장 판매가 개선될 것"이라며 "신형 제네시스 내수 및 미국판매 본격화를 통해 2~3분기 모멘텀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공식 발표하지 않은 '해외공장 증설'에 대한 기대감이 실적 개선을 이끌 주요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박 애널리스트는 "중국3공장 확장에 이어 상용1공장, 승용4공장 등 추가 해외신설이 유력한 상황이며 이 같은 해외 생산능력 확장을 통해 2016년부터 성장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태봉 애널리스트 역시 "최근 원화강세를 이용해 해외에 공장을 신설할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상황은 더욱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 배심원의 판결로 인한 실적둔화 우려보다는 '신차효과'에 주목할 시점이라며 현대차의 하반기 전망에 '파란불'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