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주식거래시스템 '프리보드'가 새로운 얼굴 'K-OTC'(Korea-Over The Counter Market)로 거듭나 이달 25일부터 투자자 맞이에 나선다. 한국을 대표하는 장외시장이란 뜻의 K-OTC는 비상장기업 주식을 투명하게 거래하는 실질적인 장을 마련하겠다는 금융투자협회의 포부를 담고 있다.

'알짜기업'이 없어 투자자 모으기에 실패했던 프리보드와 달리 비상장기업 중 유명기업을 장외시장으로 초대해 투자자를 끌어 모으겠다는 계획이다. 협회는 전작의 실패를 뒤로하고 장외시장의 새 틀을 마련하겠다는 목표지만 시장의 기대는 반반이다. 제2의 프리보드에 그칠까, 제1의 K-OTC가 될까.

 

◆ '지정기업부'로 알짜기업 투입

"자본시장 완결성 측면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다." 지난달 29일 금융투자협회에서 만난 김정수 K-OTC부 부장은 장외시장의 새로운 척도가 될 K-OTC를 이같이 소개했다. 오는 25일로 다가온 K-OTC 개편준비에 한창인 김 부장은 "최근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테스트를 진행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K-OTC란 유가증권시장, 코스닥, 코넥스 등 증권시장(장내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주권의 장외매매거래를 위해 금융투자협회가 개설·운영하는 제도화된 장외시장이다. 현재 장외거래를 위해 38커뮤니케이션, 피스탁, 팍스넷 등 사설사이트는 마련됐지만 이를 제도권으로 끌어온 공식 매매거래시스템은 없는 실정이다.


 


협회가 지난 2005년부터 비상장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해 '프리보드'를 운영했으나 하루 거래량이 1억원 미만으로 침체되고, 지난해 7월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중소기업 전용 플랫폼 코넥스시장이 개설되면서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기 때문.

김 부장은 "현행 프리보드가 장외시장을 대변하지 못해 개인 간 거래, 사설 장외거래사이트 이용이 더 잦았다"며 "K-OTC는 이 같은 거래의 위험부담을 줄이고 투자자가 안전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K-OTC는 사설 인터넷사이트와 비교해 주식거래의 편의성과 결제안전성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거래정보를 모두 공개해 투명한 시세정보를 제공하고 제출한 호가에서 추가협상이 없다. 위탁증거금 100%를 징수해 허수호가를 차단하고, 예탁결제원을 통한 결제로 안전성을 높였다. 수수료 측면에서도 큰 혜택을 제공한다. 사설사이트 거래수수료가 1∼2.5%를 적용하는 것에 비해 K-OTC는 0.09%다.

이렇듯 프리보드에서 한발 더 나아간 K-OTC는 제1부(K-OTC)와 제2부(호가게시판)로 구성됐다. 먼저 제1부는 비상장법인이 협회에 등록 신청하는 '등록기업부'와 비신청기업을 협회가 지정해 K-OTC시장에 등록하는 '지정기업부'로 나뉜다. 쉽게 말해 등록기업부만으로 운영된 현행 프리보드제도에 지정기업부가 한숟갈 더해진 셈이다. 제2부는 모든 비상장법인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거대플랫폼으로 내년 상반기 개설을 목표로 증권사와 협의 중이다.

협회가 지정기업부에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사업보고서 제출법인 중 매출액이 5억원 이상이면 K-OTC시장에 자동으로 편입되기 때문에 내로라하는 비상장기업에 투자자들이 몰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검토 결과 70개를 웃도는 기업이 지정기업 요건을 충족한 가운데 삼성메디슨, 미래에셋생명, IBK투자증권 등 유수의 기업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 부장은 이를 부동산과 비교해 "지금까지는 팔리지 않는 땅을 시장에 내놨다면 이번에는 투자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롭고 지대가 좋은 땅을 내놓은 것"이라며 프리보드와는 전혀 다른 시장을 기대해달라고 전했다.

 


◆ 매매방식 변화 없어… 아쉬움 남겨

협회가 K-OTC에 거는 기대치에 비하면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기존 프리보드를 이용했던 투자자들은 K-OTC가 매매거래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기존의 프리보드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코스닥, 코넥스 등 주권시장의 '경쟁매매방식'과 달리 K-OTC는 기존 프리보드와 같은 '상대매매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상대매매방식이란 매도자와 매수자 간 가격이 일치해야만 거래가 체결되는 것으로 가격우선원칙을 적용하는 경쟁매매시스템과 비교해 효율성 측면에서 불편함이 따른다.

이에 투자자 A씨는 "매매방식이 프리보드 활성화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며 "다른 것을 고쳐봐야 큰 의미가 없다"고 불평했다. 투자자 B씨 역시 "1부와 2부로 구성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경쟁매매'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시장을 살리려면 현행 상대매매를 폐지해달라"고 덧붙였다.

협회 역시 이 같은 불평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협회 측은 상장주권과 비상장주권을 가르는 기준 중 매매거래방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김 부장은 "상대매매방식 때문에 프리보드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투자자를 이끌 만한 기업이 없었다는 게 유동성 문제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 전체호가가 수억건에 이르면 상대매매가 불편할 수 있지만 하루 전체호가가 1000여건에 그치는 수준에서 매매방식 변화를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경쟁매매방식이 도입돼야 하지만 호가가 몇개 되지 않는 현 수준에서 거래시스템과 시장 활성화는 차후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는 곧 지정기업부를 통해 유수기업들이 K-OTC시장에 들어오면 유동성이 확대될 것이고, 유동성이 증가하면 매매방식 변화를 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자보호도 중요한 문제다. 협회는 "장외시장 특성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투자자보호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투자자 유의사항 고지제도와 부정거래행위 혐의 계좌에 대한 수탁 거부 등 예방조치제도를 도입했다는 것.

김 부장은 장외시장의 특성을 강조하며 투자자보호의 강도가 거래소 수준과는 현실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시장 운영자로서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거래소 수준의 투자자보호장치를 요구하는 것은 초가집에다 에어컨을 달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기업의 공시수준, 거래량, 거래대금이 모두 다르다"며 "불공정거래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K-OTC의 1차 설립 취지는 유통시스템이 없어 결제리스크를 안고 사설사이트, 1대1로 거래하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에 있다"며 투자자의 자기 판단과 책임감이 높은 시장인 만큼 충분한 의무를 다 했을 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연신 강조했다.
 
“K-OTC, 그것이 알고 싶다” 번외편 


다음은 김정수 K-OTC반 부장과의 K-OTC 관련 문답이다.

Q. ‘지정기업부’에 편입된 기업들 반응이 궁금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내왔다. 다만 7월 중 지정기업부 대상 기업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참여한 기업의 반응은 세 종류로 갈렸다.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곳과 ▲개의치 않는 곳 ▲불만을 토로하는 곳. 대상기업의 약 20%가량은 신청하지 않은 기업이 지정기업부에 오르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40%정도는 이미 사설 사이트 등지에서 거래가 되고 있기 때문에 관계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머지 40%는 주주들에게 그간 요청이 있어왔지만, 사설사이트 외 플랫폼이 없어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K-OTC 설립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Q. 코스닥·코넥스 등 주권시장이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자 끌어들이기에 나섰다. K-OTC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가.
“상장요건이 완화됐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장을 위한 진입장벽이 아무리 낮아진다 해도 장외기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해당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도 항상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업과 투자자들을 위해 K-OTC를 설립했다.”

Q. 프리보드의 일일 거래규모는 1억원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K-OTC에 예상 거래규모는?
“예측이 상당히 어렵다. 장외시장의 특성상 ‘이슈’에 따라 하루 거래규모의 편차가 상당하다. 다만 코넥스가 일일 6억~7억원 정도 거래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초기 10억원 이상은 거래되지 않을까 싶다. 장외시장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보면 100억~200억원 수준을 기대하지만, 초기 20억원 수준으로 거래가 돼도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거래대금이 될 것으로 본다.”

Q. 2부시장 운영은 증권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현재 진척상황은?
“현재 증권사들은 수익률을 문제로 장외매매거래 중개를 기피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호가게시판을 운영하면 관리를 위한 전담 인력을 필요로 한다. 2부시장을 필요로 하는 증권사도 있는 반면, 인건비 문제 등을 들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증권사도 있다. 현재 증권사간 매도자-매수자를 연결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9월부터 증권사와의 본격적인 협의를 통해 2부시장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