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바꿀 때가 됐는데 이번에는 무슨 차를 살까?' 현대·기아차 말고는 대안이 없던 한국 드라이버들의 눈길이 다양한 수입차로 향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자동차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지난 6월 월별 기준으로 사상 처음 15%를 돌파해 더 이상 외제차 소유가 꿈만은 아니다.
하지만 최종단계에서 수입차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것은 악명 높은 애프터서비스(A/S)와 터무니없이 비싼 부품가격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수입차의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의 5.4배, 부품 값은 6.3배다. 시장 장악을 위해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는 외국차업체들이 부품에서 이익을 챙기려는지 과도한 가격을 책정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다보니 범퍼, 브레이크 패드 등 자동차부품을 해외에서 직구(직접구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 수입차업체 폭리 논란… 아우디, 18억위안 벌금 부과
지난해 2198만대가 판매돼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도 최근 수입차업체들의 폭리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관영 CCTV는 최근 벤츠, BMW, 아우디, 포르셰 등 고급 수입 완성차가 중국 내에서 다른 나라보다 3배가량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높은 자동차 수입관세와 유통비용을 고려하더라도 외제차업체들이 과도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부품값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내에서 판매되는 벤츠의 부품을 구입해 자동차 1대를 조립할 경우 완제품 12대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결국 수입차업체들에게 철퇴가 내려졌다. 최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및 역사분쟁의 후유증인지 일본 업체들이 첫 제재대상이 됐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발개위)는 20일 반독점법 위반혐의로 히타치, 스미토모, 덴소, 미쓰비스전기 등 8개 일본 자동차부품업체와 나치 후지코시, 니혼세이코 등 4개 베어링업체에 총 12억3500만위안(약 205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들은 2000년 이후 10여년간 물밑협상을 통해 13개 주요 자동차부품 판매가격을 담합해 토요타, 혼다, 닛산 등에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발개위는 "일본 회사들이 자동차부품가격을 담합해 중국시장에 부당한 영향을 미쳤고 다른 기업들과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지적했다.
일본에 이어 유럽, 미국 자동차회사들에도 조만간 처벌이 내려질 전망이다. 중국 언론은 최근 자동차부품가격을 부당하게 끌어올린 독일 아우디에 18억위안(3004억원)의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아우디도 "발개위로부터 지적받은 위법행위를 즉각 중단했다"며 "이번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보도대로라면 아우디는 지난해 프랑스 다농 등 6개 식품회사에게 부과한 6억7000만위안을 넘어 중국 반독점법 사상 최대 규모의 벌금을 납부하게 됐다.
/자료사진=뉴스1
◆ 중국당국, 반독점법 칼날에 외제차 '백기'
중국당국이 수입차업체들을 처벌하는 데 휘두르는 칼날은 반독점법이다. 반독점법은 기업 인수합병(M&A) 등 독점을 강화하는 행위나 소비자 및 다른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는 불공정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동종업종의 기업연합(Cartel)과 기업합동(Trust)을 처벌하는 셔먼법(Sherman Act)이 1890년에 제정되는 등 일찌감치 독점행위를 법으로 규제해왔다.
중국은 다소 늦은 지난 2008년 총 8장, 57조로 구성된 반독점법을 제정, 시행 중이다. 상무부 산하에 반독점판공실을 설립해 외국기업의 중국기업 인수합병을 심사하는 한편 발개위,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공상총국)을 집행기관으로 정해 반독점 단속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반독점 단속의 핵심기관인 발개위 산하 가격감독·반독점국은 반독점법 제14조를 적용해 관련기업을 처벌한다. 이 조항은 '상품의 가격을 고정하는 행위', '상품의 최저가격을 한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즉 제조업자가 판매업자에게 상품의 판매가격을 지시하고 이를 판매업자 임의로 인하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경우 반독점법 14조를 위반한 행위로 처벌받는다.
중국 반독점법은 독점행위가 인정될 경우 해당기업에 연매출액의 1~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아우디에 부과될 것으로 알려진 18억위안은 지난해 아우디가 중국 내에서 거둔 매출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중국 당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중국 고급차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벤츠, BMW, 아우디가 잇달아 부품가격 인하에 나섰다. 벤츠가 먼저 1만개 이상의 부품가격을 최대 29% 인하했고 BMW도 2000여개의 부품가격을 최대 50% 인하하는 성의를 보였다.
◆ EU·미국 상의, "중국정부 불공정" 비판
고급 수입차의 중국 판매량도 주춤하고 있다. 차량가격 인하를 기대하는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어서다. 궈지자동차에 따르면 중국의 7월 수입차 판매증가율은 10%로, 지난 1∼5월 기록한 25.9%에 크게 못 미쳤다. 아우디의 7월 판매량은 5700대로 6월 7700대에 비해 26% 감소했고 랜드로버 역시 6600대 판매에 그쳐 전월대비 27% 급감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외국기업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중국당국이 외국기업을 목표로 불공정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고급차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유럽이 선봉에 섰다. 중국 주재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는 지난 8월13일 성명을 발표해 "외국계기업들이 반독점법 조사과정 중 불공정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EU상회는 "중국당국은 모든 기업에 공평하게 동일한 관리감독규칙을 적용해야 하며 특히 반독점법이 기업 이익을 훼손하고 판매가격을 강제로 낮추는 행정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지난 5월 제이콥 루 재무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중국의 반독점규제에 우려를 표명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중국 상무부는 반독점 행위 처벌은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발개위도 "이번 조사는 국내외 자동차업체 1000여개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외국기업만을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정부가 외국기업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반독점법을 활용하고 있다"며 중국시장을 장악한 외국기업을 타깃으로 한 이번 조사를 통해 중국기업들이 상당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