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미국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주요 도시의 생산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최근 경제전문가들이 내놓은 미국 경제에 대한 평가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 역시 부동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미국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업률은 5.4%까지 떨어져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고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는 금리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부동산이 다시 2차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 집값 상승, 경제 불평등 심화
미국 부동산 중개인 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 이하 NAR)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요 도시에서 집값이 상승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혜택이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돼 경제적 불평등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렌스 윤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자가 소유비율 하락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이들이 집을 팔아버린 상황에서 집값이 상승하면 소수만이 이득을 본다는 설명이다.
흡사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득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NAR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의 100대 주요 도시를 조사한 결과 집값이 상승하고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할 때 90% 이상에서 자가 소유비율이 하락했다. 이 기간 동안 자가 소유비율은 3.3%포인트 하락했고 자가 소유자들의 재산은 5만달러 이상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많은 미국인들이 모기지론을 제 때 상환하지 못해 집을 매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상승하면 지불해야 할 월세만 더 느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또 집을 소유하기도 더 어렵게 돼 경제적 격차는 더욱 좁히기 힘들어진다.
실제로 경제적 불평등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되는 지니계수의 경우 조사대상 100개 도시 가운데 93개 도시에서 상승했다. 특히 자가 소유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
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에서 자가 소유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며 “특히 집은 중산층의 가장 중요한 재산 증식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자가 소유비율은 69%가 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63.7%까지 하락하며 25년만에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수백만채는 담보로 제공돼 있고 처분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실제 자가 소유비율은 더 낮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모기지상품의 접근성을 높이고 소형 주택 건설을 늘려서 부동산 가격 상승의 혜택이 보다 광범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뉴욕 등 주거공간 확대하면 GDP 높아진다
제한적인 거주 공간은 일자리와 집간 거리를 떨어트리고 이는 미국 경제의 비용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엔리코 모레티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와 장 타이 셰 시카고대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산 호세의 토지 이용 제한을 풀면 국내총생산(GDP)을 9.5%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지난 1964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220개 도시가 미국 전체 성장률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와 도시의 성장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모레티 교수는 “소수의 미국 인력만이 생산성 높은 도시에 접근할 수 있다”며 “보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은 전체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산 호세는 지난 45년 동안 노동생산성과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테크놀로지와 금융, 연구 등 인적 자원이 중시되는 산업이 크게 발달한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도시는 미국 경제를 성장시킨 원동력은 아니었다. 이들 지역의 성장률은 19.3%인 반면 전체 경제 기여도는 6.1%에 그쳤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들 지역의 빠른 생산성 증가는 고용 증가가 아닌 집값과 임금 상승이 주요 원인이었기 때문”이라며 “세 도시와 러스트 벨트의 지역 경제성장률은 큰 차이가 났지만 전체 경제 기여도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맨해튼 지역의 부족한 아파트 공급물량은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맨해튼연구소에서 공공정책을 담당하는 아론 랜 선임연구원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지역은 좀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한다”며 “하지만 무조건 신규 건축을 허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단지 집값이 싸고 공급이 많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을 너무 많이 지어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주거 매력도는 감소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