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3대 그리스도교 순례지로 꼽힌다. 열두 제자 중 야고보(Saint Jacob)의 유해가 모셔진 것으로 유명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하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천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순례자가 걸어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으며 자신의 영혼을 반추한다. 이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을 글로 써낸 작가들도 많다. 파울로 코엘료를 비롯해 세스 노터봄, 베르나르 올리비에, 그리고 한국의 작가들 이름도 여럿 떠오른다.
<불멸의 산책>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또 한명의 작가 이야기다. 장 크리스토프 뤼팽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의사, 역사가, 외교관으로 16세기 프랑스의 브라질 침략을 소재로 한 소설 <붉은 브라질>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명망 높은 지식인이다.
그가 어떤 거창한 목적이나 갈망을 가지고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된 것은 아니었다. 세네갈 대사직을 사임하며 ‘정서적 디톡스’를 위해 도보 여행을 해야겠다는 정도의 마음 가짐이었을 뿐. 하지만 어쩌다 보니 코스는 산티아고 순례길, 그것도 전체 순례자의 5퍼센트만 택하는 고즈넉하고 험준한 북쪽길을 택하게 된다.
‘지적인 프랑스 소설가의 순례기’라고 하니 역사와 문학 작품에 대한 수많은 인용과 영혼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이 시적인 문장들로 펼쳐질 것이란 기대가 든다. 하지만 이 책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고 상쾌하고 날렵하다. 일단 여행의 초반부부터 그는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는다. 전직 대사님의 노상방분(?) 경험 고백이다.
“공관에서 하얀 윗옷을 갖춰입은 열다섯명의 사람들에게 시중을 받던 대사가, 북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된 남자가 가장 하찮고도 가장 역겨운 죄를 숨기기 위해 처음 들어간 공원의 나무 둥치 사이로 달려가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의 순례기에 영적 깨달음이나 인간과 영혼에 대한 초월적 명상은 없다. 길 위의 풍경 또한 언제나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버림받은 채 쇠락하고 있는 교외 별장촌과 창고들이 이어지는 풍경에는 진저리를 내고, 순례의 의미에는 무관심하고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다니는 관광객들과 허세를 부리기 위해 길을 걷는 괴상한 순례자들을 희화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도취도, 어떠한 허영도 없는 이 순례기에는 한 발 한 발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고야 마는 사람들의 담백하고 굳은 의지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의지는 오로지 그가 자신의 발로 기나긴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잠깐 걷는 것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지 못한다. 돌멩이는 가공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돌멩이를 다듬으려면 더 오랜 노력, 더 많은 추위와 더 많은 진흙 길, 더 많은 배고픔과 더 적은 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래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기를 책으로 낼 생각이 없었고, 여행 중에는 노트도, 메모도 하지 않고 오직 그 순간을 몸 속 깊이 느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다 몇 년 후, 지인들과 산티아고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책으로 낼 것을 제안받고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이 책을 써냈다. 그리고 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지난 2013년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