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경영을 펼치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요즘 시름에 잠겼다. 1000억원대의 차명계좌 논란에 휩싸이는가 하면 하반기 야심차게 선보인 신사업은 곳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스크래치형 상품권은 발매 중단 이후에도 '미운 오리' 신세로 전락했고 '정용진 페이'라 불리는 모바일 간편결제서비스 SSG페이도 예상과 달리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여기에 두번째로 도전장을 던진 서울시내 면세점사업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정 부회장의 머리는 이래저래 복잡하다.
◆불법 차명계좌 논란… 국회에서도 '쟁점'
지난 7일과 10일, 각각 국회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신세계의 1000억원대 차명계좌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은 지난 5월부터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전·현직 임직원 명의로 된 차명계좌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과 김기식 의원은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신세계 차명계좌 내역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차명계좌 실소유주가 정 부회장 등 총수일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
금융당국도 이를 거들었다. 차명계좌가 존재한다면 공시위반에 해당된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신세계그룹의 이마트 차명주식 의혹과 관련해 공시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 /사진제공=신세계
신세계 차명계좌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국세청이 신세계그룹 총수일가의 명의신탁주식(차명주식)을 발견해 증여세 등을 추징한 바 있다. 만약 이번에 또 다시 차명계좌 실소유주가 오너일가로 밝혀질 경우 정 부회장은 도덕성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신세계가 추진한 신사업도 성과가 썩 좋지 않다. 신세계는 지난 12일 5만원·10만원권 신세계 스크래치형 상품권 발행을 중단했다. 지난 8월3일 첫선을 보인 지 불과 두달 만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상품권조차 직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다. 신세계는 스크래치형 상품권 신규 발행을 중단했지만 기존에 판매했던 상품권은 사용 가능하다. 이마트 포스(POS) 계산 직원들은 이 때문에 스크래치형 상품권으로 고객이 결제할 경우 수차례에 걸쳐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마트 직원 A씨는 "고객이 결제할 때 스크래치형 상품권을 제시하면 위조 여부와 뒷면이 긁혔는지 등 두세차례에 걸쳐 확인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특히 고객이 몰리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이 상품권으로 결제할 경우 시간이 적잖게 소요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 B씨도 "위조 (스크래치형) 상품권일 경우 결제 과정에서 포스창에 진위 여부가 나오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며 "이 과정에서 결제를 기다리는 손님이 화를 낼 때도 있다"고 답답해했다.
이처럼 신세계가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이유는 위조 스크래치형 상품권이 시중에 유통됐기 때문이다. 앞서 경기도 용인에서 스크래치형 상품권 2900만원어치를 구입해 사용한 뒤 뒷면 스크래치 부분을 덧칠하는 수법으로 위조하고 영세 구둣방이나 상품권 할인 판매소 등을 통해 시중에 유통한 사건이 발생했다. 신세계는 이와 관련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이로 인해 신세계는 현재 발행하는 상품권을 전면 중단하고 내년에 출시 예정인 1만원·5000원·1000원권 상품권 발행 계획도 취소했다.
◆오너 이름 내걸었는데… SSG페이 왜 이러나
SSG페이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SSG페이는 사용자가 SSG페이 애플리케이션(앱)에 신용카드를 등록하고 현금과 상품권으로 SSG머니를 충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모바일 결제시스템이다.
이마트 한 직원은 "SSG페이로 결제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면서 "현재 이용자 대부분은 직원들이다. 지난 추석때 본사에서 상품권 대신 SSG페이를 선물로 지급했는데 그걸 사용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SSG페이의 실적이 부진한 것은 여러 이유가 꼽힌다. 우선 모바일 결제시장을 이미 삼성페이가 주도하고 있어 이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실제 삼성페이는 출시 한달만에 가입자가 60만명을 돌파하는 등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제공=신세계 상당수 SSG페이 사용자가 이용시 불편을 호소한다는 것도 부진의 이유다. 잦은 에러와 상품권 미인식, 오류 등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일부 이마트 지점에선 내부직원의 부정사용이 적발돼 안전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핸드폰에 저장된 캡처 화면을 바코드 리더기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SSG페이 앱을 실행시키고 6자리 비밀번호를 누르면 모바일에 고유번호가 탑재된 바코드 화면이 뜬다. 그런데 고유번호가 뜬 화면을 캡처해 다른 사람에게 전송하면 전송된 모바일화면만으로도 전국 이마트 등에서 결제가 가능하다. 이는 바코드 리더기가 고유번호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SSG페이화면이든, 캡처화면이든 고유번호만 바뀌지 않으면 얼마든지 사용 가능한 셈이다.
물론 바코드 고유번호가 2분마다 계속 바뀌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크래치형 상품권 위조 등 예상을 뛰어 넘는 지능형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SSG페이도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다는 게 보안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 신세계측은 SSG페이 결제 건수와 월 거래액 등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라 불리는 2차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도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롯데와 SK네트웍스, 두산 등 2차 서울시내 면세점에 뛰어든 주요 기업 오너들이 사업권 획득에 자신있다며 여론전을 펼치는데 반해 정 부회장은 다소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1차 면세점사업에 뛰어들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셈.
이에 대해 유통업계에선 롯데와 SK네트웍스, 두산에 비해 신세계가 여론전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신세계 측은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하기 위한 사전 작업은 차분히 진행 중"이라며 "신세계디에프에서 주도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이다.